대선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네거티브 공세가 뜨겁다. 정책은 뒤로 물러나고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언사가 칼날이 되어 난무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속시원해 하거나 즐거워하는 게임도 아니다. 결국 한숨이 나오는 쪽은 대선 후보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보다 더한 불황에 기업이 아우성이다. 특히 자금력이 취약하고 수급 대응력이 떨어지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한계에 봉착했다. 하반기 들어 9월 말까지 석 달 동안 부도 업체 수가 314곳이나 됐다. 한국은행 어음부도율 동향이다. 중소기업 한 곳당 평균 종업원 수를 3.9명으로만 잡아도 줄잡아 1220여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대선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 지난 8월 중순이었다. 이때부터 유력 대선 후보들이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핏대를 세웠다. 그 사이 중소기업과 종사자들은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 `당선되면 중소기업부를 만들겠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겠다` 등으로 공약했지만 당장 죽음의 파도를 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이런 현실적 괴리는 왜 생기는 걸까. 며칠 전 감사원이 내놓은 주요 국책 금융지원기관 감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보고 답을 찾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부의 정책 결정이 중소기업 현장에서 통하지 않고 효과를 못 내는 사이에 금융기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담보 능력이 미약해 실제로 보증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먼저 지원하도록 법에 명시됐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 보증엔 인색했다.
지난 2007년 신용등급 보통이하(미흡 포함) 기업에 신규 또는 증액한 보증기금 비율은 12.7%였지만, 지난해에는 6.5%로 낮아졌다. 반면에 우량(매우우량 포함) 기업에 보증한 비율은 같은 기간 4.9%에서 16.3%로 세 배 이상 급증했다. 법을 망각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정책금융공사가 은행을 통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중소기업에 지원한 온렌딩자금 2조8000억원 가운데 80%에 가까운 2조2000억원이 금감원 기업표준신용등급 BBB+ 이상 우량기업에 돌아갔다.
시중 은행은 동반성장 상생대출이나 지방자치단체 협약대출을 받는 중소기업에 일반 대출 때보다 대출금리 조건을 불리하게 적용한 사례도 드러났다. 이쯤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정책금융 중개)을 맡긴 격이다.
이런 `반칙`의 최상층에는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있다. 대선주자가 금융 정책·감독, 금융소비자 보호로 크게 나눠 거버넌스 체계에 칼을 대겠다고 하자 펄쩍 뛰며 반발한 것도 이들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 관련 정부 조직과 시장에 끼어 있는 `탐욕`을 도려내지 않으면 기업과 산업 관련 공약이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이진호 경제금융부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