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04년 3월 소프트웨어(SW)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대기업의 공공 시스템통합(SI) 시장 입찰 참여 제한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매출액 8000억원 미만 기업은 5억원, 매출액 8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10억원 미만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1990년 창업 이래 23년째 SW기업을 경영해 온 내가 당시 느낀 감정은 거의 감격 수준이었다. 생각해 보라. 14년 동안 공공시장에서 무제한으로 대기업과 경쟁해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떤 때는 졌지만 질 때가 훨씬 많던 세월이었으니.
`시작이 반`이라고 이렇게 시작한 SW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은 제한 금액이 2007년, 2009년, 2012년 각각 두 배로 상향 조정됐다. 드디어 올해 5월 SW산업진흥법이 통과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공공정보화시장 진출을 제한했다. 그리고 지식경제부는 공생발전이 가능한 SW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대기업의 공공SW사업 참여제한 예외사업 고시(안)`을 마련했다.
지난달 22일 지경부는 14개 기관이 대기업 제한 예외사업으로 신청한 3179억원 규모의 17개 사업 가운데 국세청·관세청 차세대 정보화 사업을 포함한 4개 사업을 인정해 대기업 참여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SW업계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예외 인정` 건수가 신청 건수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 결과를 두고 `엄정하게 심사했다`는 평가가 나온 반면에 `예외 인정` 사업 예산이 모두 대규모여서 당초 우려대로 발주처의 통합발주 가능성을 드러내 `SW산업진흥법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나는 17개 사업 가운데 13개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불허했다는 점에서 심의위원회가 나름대로 정부가 입법한 SW산업진흥법 실천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국세행정시스템 개편 사업은 2단계로 이뤄지는 지속사업으로 기존 사업자를 제외하면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대기업 참여를 인정한 사례다. 특히 이 사업은 주사업자만 대기업일 뿐 실제 중소기업이 우리 회사를 포함해 40여곳이나 함께 참여했다. 대기업 단독 사업으로 볼 수 없다.
예외사업으로 인정된 4개 사업 모두 초대형 사업이다. 프로젝트 실패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이라고 본다. 다만, 대규모 사업이 대기업 참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빌미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SW 프로젝트 수행 과정은 지적인 작업이다. 많은 사람이 관련된다. 문서나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의사소통이 간단해 보이지만 업무가 복잡해질수록 이를 체계화하고 공학화하는 것이 어렵다. 프로젝트 참여 인원 수가 n명일 때 이들 간 커뮤니케이션 수는 n(n-1)/2다. SW사업이 대형화하면 커뮤니케이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SW개발의 공학적 접근은 대형 사업을 분할해 의사소통 수를 줄임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한다. 대형 사업을 수행하는 주사업자는 반드시 SW공학적으로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초대형 SW사업은 발주자가 프로젝트 성공을 담보할 주사업자를 제한적으로 선택하게 하면 사업 추진이 주춤하게 된다. 이는 결국 SW 수요 위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떠한 좋은 규제도 역기능이 있다. SW시장 수요를 위축시키는 것은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제일 피하고 싶은 결과일 것이다.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제는 SW시장을 건전하게 키울 때다.
전문 SW패키지 기업은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대형사업 발주자는 외산 SW를 대체할 국산 SW 도입을 적극 검토해 중소기업 SW시장 확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김종현 정보산업협동조합 SW상생생태계구축추진위원장 jonghyun@wi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