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테크노파크에 2012년은 악몽이었다. 지난 5월 지식경제부 기획감사에서 총 224건의 부실과 부정이 적발됐다. 징계 대상자만 20명에 달했다. 수장이 비리로 옷을 벗은 곳도 있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지역 테크노파크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감사시스템을 정비해 비리를 원천 봉쇄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수난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테크노파크가 다음 달쯤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 감사원이 테크노파크를 감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요청에 따른 것이지만 지경부도 이참에 깨끗이 털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분위기다.
테크노파크도 자체적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사에 나섰다. 비리 규모가 컸던 대구테크노파크가 최근 발 빠르게 감사팀을 신설했다. 대규모 순환근무 인사도 단행했다. 인사에서 칸막이를 없애 재단과 단, 센터 구분 없이 인사 발령을 냈다. 회계와 인사 등 행정 업무를 재단에 통합했다. 다른 지역 테크노파크들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직 변화를 꾀할 참이다.
그런데 조직을 바꾸고 사람을 순환 배치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테크노파크는 매년 지자체 감사를 받았다. 문제는 감사가 부실했다는 점이다. 지경부는 부실한 지자체 감사만 믿고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도 자체 감사를 하지 않았다. 테크노파크 비리는 정부와 지자체, 테크노파크의 합작품이다.
테크노파크 내 각 센터의 예산권이 크게 축소될 전망이다. 예산 집행은 어느 정도 투명해지겠지만 재단의 행정 업무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질 것이다. 예산 결제에 소모되는 시간 낭비를 감수해야 한다. 각 센터가 자율적이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수주할 의욕을 잃을 수 있다.
여기에다 산업별로 특화된 센터 내 인력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한 자리에 오래두면 비리가 생긴다`는 이유로 순환시키면, 기업이 비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특정 산업에 맞춘 특화센터가 그 기능을 상실하는 꼴이다. 지난달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김상훈 의원은 “행정을 통합하면 각 센터가 독자적으로 사업할 동기를 상실할 수 있다”며 “센터 기능을 활성화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옳은 지적이다.
투명성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인력의 전문성, 효율성, 독립성, 자율성 모두를 잃을 수 있다. 테크노파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이 퇴색된다는 의미다.
지역산업 육성 정책을 기획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테크노파크 역할이다. 지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에 18개가 운영됐다. 그동안 낙후된 지역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나름 성과도 컸다. 비리에는 단호하게 칼을 대는 게 맞다.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의 변화는 패착이다. 투명하되 전문성을 가지고 자율적이며 창의적으로 기업을 지원할 변화가 지금 테크노파크에는 필요하다.
정재훈 전국취재 부장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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