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통(疏通) 대통령

구약성서 창세기전에 나오는 `바벨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천국으로 향하겠다던 인간의 오만에 신의 처방은 간단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불통으로 인한 대혼돈은 하늘로 치솟던 대역사를 수포로 돌렸다.

한국 정치가 불통의 위기에 빠진 이유도 비슷하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서로 다른 이념의 언어로 시비(是非)를 가리는 `치킨게임`에만 빠졌다. 정부의 화법은 관료의 일방통행식 명령어에 가깝다.

이명박 정권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대부분 `소통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2008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촉발된 촛불시위, 2009년 4대강 반대 시위, 2010년 세종시 문제와 한·EU FTA, 천안함 원인 규명을 둘러싼 분란 등이 전형적인 사례다. 2008년 촛불시위대를 막기 위해 컨테이너로 광화문 대로를 막은 이른바 `명박산성`은 불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민생·신뢰·통합을 새 시대의 키워드로 내세웠다. 41년만에 과반이 넘는 지지율을 얻은 박 당선인의 첫 일성은 `약속은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5년간 약속을 지켜낸다면 대한민국은 초일류국가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가 제시한 세 가지 키워드는 지난 정권의 반성과 연결된다. 민생·신뢰·통합 등을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이 `소통`이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언로가 열려야 생생한 민생 현장을 챙길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신뢰가 생기고, 통합이 이뤄진다.

박 당선인의 약속 지키기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초박빙의 양자 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이념과 지역, 세대로 양분돼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어느 쪽도 승자라 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양분된 나라를 하나로 묶지 못하면, 이념과 세대 대결의 질곡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통합과 상생의 정치가 절실한 이유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소통 인프라가 세계 최강이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시·공간을 초월한 공론(公論)이 빛의 속도로 만들어진다. 그간 불통은 이를 외면하거나, 오용하면서 비롯됐다.

이념의 당쟁을 종식시킨 조선왕 정조는 “유소불위(有所不爲), 즉 하지 않는 바가 있어야 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설파했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정에서 소외된 사회 약자와 젊은 디지털 세대에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조만간 출범할 `인수위원회` 구성은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지난 5년간 소외된 세력이 있다면 그들과 먼저 손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그가 말한 약속 실천의 시작이다.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