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선 열기가 한창이던 얼마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흥미로운 보도를 했다. 이른바 `삼성 공화국`이 한국 대선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이 한국 경제의 아이콘으로 성장했지만 대선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경제 민주화 공약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보도였다. 그렇다. 국가 권력에 버금가는 막강한 영향력, 늘 원죄처럼 따라붙는 세습 경영, 탐욕의 도를 넘어선 골목 상권 침탈 등 재벌이 양산한 사회적 부작용을 둘러싼 비판의 중심에는 언제나 삼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냉정을 되찾고 삼성을 바라봐야 한다. 대선전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등장한 경제 민주화의 단순 논리는 아니다. 삼성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자. 지난 3분기 누적 삼성 그룹의 매출액은 10대 그룹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 영업이익은 무려 절반에 가깝다. 이중 삼성전자 하나가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80%를 넘는다. 그 의존도를 생각하면 삼성전자 없는 우리 경제를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시점은 삼성이 지금 우리 경제, 아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고스란히 배태하고 있다는 점이다. 쉬운 예를 보자.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인가. 지분 구조는 물론이고 어디서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는지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내 설비 투자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이제 첨단 산업 분야의 설비 투자마저 실종될 상황이다.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해외로 더 나갈 수밖에 없다. 대졸 공채를 포함해 매년 젊은이들에게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중장년 실업자를 가장 많이 양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노령화 사회를 촉진하는 대표 기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결국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제조업 설비 투자와 고용, 재정, 사회 안전망에 이르기까지 최전선에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문제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지역 민심을 눈치보며 삼성광주전자 사업장에서 백색가전을 생산할 수 있겠는가. 또한 외국에서 수십, 수백배의 고용을 창출하면서 매년 공채 얼마를 뽑는다며 홍보할 수 있겠는가. 갈수록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여론의 압박에 시늉만 낼 수 없는 때도 멀지 않았다. 그런 삼성에게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라고 강압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게 현실이다. 수많은 삼성 협력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모든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현주소이기도 하다.
대통령 당선인은 삼성을 통해 향후 5년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 민주화가 겨냥한 재벌 개혁은 시작일 뿐이다. 단순한 분배 논리에서 나아가 현실에 천착해 발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 권력과 맞먹는 공화국으로 불리는 삼성의 책무이기도 하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