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시대에는 산업화시대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그간 석·박사 중심의 엘리트가 주도한 이성 중심의 R&D의 고정화된 틀을 벗어나야 한다. 어린이나 주부도 창의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사업화할 수 있는 상상개발(I&D:Imagine & Developement)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경제는 I&D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됐다. 스티브 잡스가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을 창출하면서 세계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꾼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휴대폰 자체 품질만으로 승부를 걸어온 노키아, 모토로라 등이 줄줄이 마이너로 전락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미 개발된 휴대폰과 PC 기술을 잘 조합해 `아이폰`을 개발했고, 잘 갖춰진 무선 통신 인프라 위에 `앱 장터`라는 신개념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기존 자원에 단지 상상력과 창의력이 보태졌지만, 새로운 시장과 함께 엄청난 부가가치가 만들어졌다.
I&D는 창조경제의 핵심인 창업 열풍을 불러올 원동력이다. `애니콜 신화`로 유명한 이기태 삼성전자 전 부회장은 “기업은 돈 되는데 투자하는 법인데, 개념적으로 봤을 때 I&D는 자연스럽게 투자를 유인하는 동인”이라고 지적하고 “I&D를 통해 창업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정부 기술 개발 정책의 물줄기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기술 개발에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고 I&D 정책이 거창한 개념은 아니다. 현재 잘 갖춰진 개발 자원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간 공공 R&D의 성과물이나 데이터베이스(DB) 정보화로 구축한 다양한 정보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질 수 있다.
윤종록 연세대 교수는 “전국 공공 도서관에 단계적으로 무한 상상실을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일반인이 스토리텔링, 발명, 디자인 등에서 다양한 상상클럽을 자발적으로 결성하고 사업화하는 창조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책 연구개발 프로젝트 관리시스템도 변화가 요구된다. 우선 기존의 연구지원, 평가 시스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지금까지는 성과, 성공률 등이 정부 지원을 결정하는 핵심이었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기에 실패를 통한 학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이런 지원제도가 창조적인 연구를 가로막는다고 입을 모은다. 공상과학소설이 실제 과학의 변화를 이끌듯 다소 무모한 도전과 상상력에도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목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기존 R&D 정책은 긴 호흡보다는 전시행정적인 측면이 있었다”면서 “자연스런 생태계 구축보다 정부가 대기업 중심으로 연구단을 만들고 중소기업을 아래에 붙여 성공률을 높이는 형태였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과학기술·ICT에 기반한 새로운 창조경제로 가려면 정부 정책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것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면서 “지식재산이나 아이디어에 기반한 기업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D가 활성화할 수 있는 스마트 생태계 조성에도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
우리나라에도 스마트 생태계 성공사례로 모바일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떠오른 카카오톡이 있다.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메신저로 출발했지만, 이젠 모바일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카카오톡 게임하기를 통해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등 수많은 인기게임이 등장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 환경이 카카오톡 같은 회사가 성장하기에는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카카오는 NHN 창업자 출신의 김범수 의장이 뒤에 있었기에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기업은 성공 단계에 오를 때까지 버티기가 어렵다.
정부가 최근 창업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창업보다 취업이 우선이다. 창업 선진국이 투자를 받아 창업한다면, 우리나라는 융자를 받아 창업하기 때문이다. 창업에 실패하면 빚쟁이나 경제사범이 되기 십상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초기 기업에 투자하지 않기는 벤처캐피털도 마찬가지다. 위험도가 높은 것도 문제지만, 성공해도 투자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인들은 인수합병(M&A) 환경만 제대로 갖춰도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토로한다.
이상목 사무총장은 “벤처기업가나 연구원, 대학교수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다”며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I&D 성공조건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