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특별인터뷰>리처드 대셔 미국 스탠퍼드대학 US-아시아기술경영센터(US-ATMC) 센터장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원유`로 빅데이터를 꼽았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지식을 생산해내는 새로운 산업`이라며 빅데이터를 주목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 가운데 90%는 지난 2년 동안 만들어졌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쏟아지는 데이터가 하루에만도 250경바이트에 이른다. 바야흐로 빅데이터 시대다.

리처드 대셔 미국 스탠퍼드대학 US-ATMC센터장
리처드 대셔 미국 스탠퍼드대학 US-ATMC센터장

리처드 대셔 미국 스탠퍼드대학 US-아시아기술경영센터(US-ATMC) 센터장 겸 엔지니어링스쿨 교수는 본지와의 신년기획 인터뷰에서 “2013년 주목해야 할 기술은 단연 빅데이터”라고 단언했다. 그는 “구매 당사자보다 서버에 축척된 무궁무진한 데이터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정확히 알려준다”며 “빅데이터 분석을 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필연적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빅데이터 대응 여부에 따라) 올해를 기점으로 기업 간 격차가 크게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일본국립대 고위 자문위원에 위촉되는 등 `아시아통`으로 평가받는 대셔 센터장은 지난해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들이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국제신용평가 등급이 `투자부적격(정크)`으로 떨어졌음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런 수치들이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새로 태어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산업에 대해서도 대셔 센터장은 독특한 전망과 해법을 내놓았다.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추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빅데이터 분석에 의한 개인화된 소비도 수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에 불고 있는 스타트업 창업 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는 대셔 센터장은 “기업은 잘 나갈 때도 늘 `차선책(플랜B)`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며 “초기 성공에 안주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종의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대셔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아시아 기술산업을 관통할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고, 해당 기업은 어떤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는지.

▲새해 화두는 단연 빅데이터 분석이다. 이 분야는 미국, 영국 등지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해왔다. 글로벌 IT기업이 소셜미디어 분석 도구를 얻기 위해 스타트업을 매입하는 것은 유행이 됐다. 지난해 세일즈포스닷컴이 래디언6를 합병한 것이 바로 그렇다.

빅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유용하지 않다. 소비자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통찰력(insight) 있는 분석도구(tool)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시아 지역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만큼 클라우드 속에 담긴 아시아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 데이터는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다. 기업은 이를 마케팅에 이용하고 새로운 판매 채널을 열어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기술산업 분야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중 한국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 행동 등을 예측하는 산업이 뜰 것이다. 현재 생성되는 데이터의 80% 정도가 텍스트, 채팅, 사진, 비디오 등 비정형 데이터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은 아직까지 정형 데이터를 분석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 양식이나 브랜드 충성도에 대한 차별화된 패턴을 찾아내지 못한다.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의 행동 양식을 찾는 비즈니스가 뜰 것이다.

한국도 빅데이터를 분석해 비즈니스 목표를 정하고 기업 역량과 효율성을 높이는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일본 전자산업이 몰락했다는 견해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일본 전자기업이 살아날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일본 전자산업이 완전히 몰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PC산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몇몇 기업은 새로운 생각을 했어야 하는 시기였다. 즉, 다시 태어날(revive)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앞으로 일본 전자기업들은 늘 새로운 조합을 생각해내야 한다. 좋은 기술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들은 무수히 많다. 소비자 경험이 녹아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애플이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고 앱스토어 같은 일련의 문화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어떤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각 국의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부품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을 차세대 기술 혁신은 플렉시블 모듈형 생산시스템이 될 것이다. (※ 플렉시블 모듈형 생산시스템은 산업용 로봇으로 생산 공정을 자동화로 바꾸는 방식. 제품을 생산할 때 정보만 살짝 바꾸면 생산라인 변경이 용이해 다품종 소량생산을 자동화할 수 있다.) 이 생산시스템을 통해 개인에 맞는 맞춤형 주문 제작이 활성화될 것이다. 또 이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즉, 보다 개인화된 소비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업들은 빅데이터 분석 시장의 좋은 고객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 미국 간 벤처 창업 환경과 문화, 기업가정신 등을 비교해달라.

▲한국과 미국은 다른 문화와 환경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에 연장자를 공경하고 그들의 유산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 미국과 많이 다르다.

사실 창업 초기 단계는 한국이나 실리콘밸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실리콘밸리처럼 크게 대박을 터뜨린 스타트업이 나오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생각에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니치마켓(틈새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초기 성공에 취해 고성장세를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긍정적인 점은 한국은 정부의 높은 관심과 지원, 올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투자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고객 등 환경적으로 훌륭한 요소들이 많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일본에서 창업한 경험이 있는데, 어떤 교훈을 얻었지.

▲일본은 한국, 미국과 달리 창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스타트업 기업이 성장하기에는 좋은 토양이 아니다. 일본과 실리콘밸리는 정부 정책부터 소비자 행태까지,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시장이다. 스타트업 기업가는 늘 실패에 대한 출구 전략, 즉 `차선책(플랜B)`이 있어야한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장이 바로 일본이다.

-한국이 실리콘밸리처럼 기술벤처가 부흥하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해결돼야 하나.

▲지금까지 인터뷰도 이 점을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려면 우선 좋은 아이디어와 풍부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훌륭히 수행할 인재도 필요하다. 최고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팀을 만들어 사업 계획을 짜야한다. 그리고나서 고객과의 접점에서 새로운 마케팅을 구사해야 한다. 주주들에게는 늘 변동이 있을만한 요소를 미리 알려주어야 뒷말이 없다. 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냈다면 마지막에 필요한 건 행운뿐이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리차드 대셔 교수 약력

◆ 1978년~ 1985년 스탠퍼드대학 언어학 석·박사 학위 취득

◆ 1990년~ 1993년 일본 도쿄에서 스타트업(미디어 국제 라이선싱, 지식재산권 관련) 창업

◆ 1994년~ 현재 스탠퍼드대학 US-ATMC센터 창립자 겸 센터장 취임

◆ 2001년~ 2003년 일본 과학기술부 자문역

◆ 2004년~ 2010년 일본국립대 거버넌스 고위 자문위원 위촉(외국인으로는 최초)

◆ 2008년~ 2009년 홍콩 S.A.R 스터디 자문역

◆ 2010년~ 현재 스탠퍼드대학 전기공학과(기술경영), 아시아언어문화학과(일본) 자문역, 아시아퍼시픽 학생창업자모임 조직 지도교원 등

◇US-아시아 기술경영센터(US-ATMC)는?

1992년 스탠퍼드대학 엔지니어링 스쿨 내에 설립된 연구센터다. 이 센터의 목표는 국제 기술경영 전략에 대한 실용적인 시각을 확보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이다. US-ATMC는 미국과 아시아의 기술기업과 인재를 연결해 공동 연구를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공동 연구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정기적으로 세미나, 화상회의 등을 통해 공유한다. 그동안 연구한 과제들은 나노테크놀로지, 시스템온칩(SoC), 일본과 동아시아 기술개발(R&D) 전략 등 20여개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