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도쿄의 한 호텔. 지난해 10월 르네사스를 인수한 정부 산하 산업혁신기구(INCJ) 측과 도요타 자동차 측 관계자가 만났다. 혁신기구 관계자는 “르네사스가 납품하고 있는 마이크로컨트롤러 품질이 우수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며 “가격 정책을 재검토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도요타 관계자는 “가격 책정은 중요한 사안이라 경영진과 협의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혁신기구의 이 같은 요구는 도요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간 르네사스는 묵묵히 부품을 개발·생산해 납품하는 협력사였다. 고객사를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는 기업문화가 뿌리 내려 있었다. 르네사스에 몸담았던 시모무라 히로시 미쓰비시전기 회장은 “르네사스는 고객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집착했다”고 회고했다.

르네사스가 전통적인 하도급업체 역할을 벗어나 수익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가 14일 보도했다. 일본 기업 문화 탓도 있지만 전기산업 분야 하도급업체는 고객과의 관계를 배려해 일정 수준 단가가 맞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서로 공생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혁신기구 한 관계자는 “그간 르네사스는 적정한 이익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왔다”며 “이제는 고객과 싸워서라도 단가를 높이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신일본제철의 미무라 아키오(72) 상담역이 있다. 혁신기구의 운영방침을 결정한 위원 중 한 명이다. 그는 “르네사스는 단순한 하도급업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반도체 업체가 돼 고객과 협상 테이블에서 대등하게 협상할 정도가 되지 않으면 공적자금을 출자하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출자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르네사스는 지난 8일 2013년 연결 예상 실적을 하향 조정했다. 영업이익은 기존 210억엔 흑자에서 260억엔 적자로 크게 낮췄다. 매출도 기존 예상보다 500억엔 낮춘 7700억엔으로 잡았다. 르네사스의 주력 제품이던 마이크로컨트롤러의 범용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신흥국에서 유통되는 저가 제품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네사스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현재 각각 30%(세계)와 50%(일본)에 머물고 있는 마이크로컨트롤러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두 배 이상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르네사스는 최근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 일본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글로벌 업체에도 맞는 `표준 부품` 개발에 들어갔다.
생산공장도 마이크로컨트롤러 양산에 집중하기 위해 재비치 했다. 반도체 조립을 담당하는 3곳과 자회사 1개사를 일본 최대 반도체 후공정 위탁생산 업체인 `제이디바이스`에 오는 6월 매각하기로 했다. 르네사스는 지난해 전체 19개 공장 중 11개 공장을 매각하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무라 다카시 마이크로컨트롤러 사업부 총괄 부장은 “고객의 요구대로 성능과 가격을 조정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제품의 기술력을 높이고 고객사를 늘려 전문업체로서 덩치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