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췄다. IMF 보고서는 작년 10월 전망치 3.6%보다 0.4% 포인트 하향 조정한 3.2%로 내렸다. 반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5%로 종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국내 기관들도 잇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렸다. 작년 1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이전보다 0.4% 포인트 낮추며 추경 예산 편성 필요성도 지적했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1월 올해 성장률을 2.8%로 끌어 내렸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국은 IMF 구제 금융 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난 것이나 지난 2008년 리먼 사태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한 전례가 있다. 여러 비결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제조업의 체력을 강하게 길렀던 덕분임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침체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다른 강도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제조업의 위기 신호다.
며칠 전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6대 산업이 최근 삼중고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휴대폰·디스플레이·반도체·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 산업이다. 첫 번째 위기가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로 예전처럼 공격적 양산 투자를 통한 점유율 확대가 어렵다는 점이다. 두 번째 징후는 거대 중국의 추격과 아베노믹스를 앞세운 일본이 협공을 벌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드웨어의 차별화, 즉 혁신의 한계에 봉착하고 차세대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파생된 신종 리스크를 꼽았다. 적절한 지적이지만 해법은 막연해 보인다. 위기 상황을 보는 관점도 대기업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제조업 공급망 전반의 체력을 한층 강하게 키울 계기가 절실하다. 수출을 주도하는 대기업과 후방 산업, 즉 중소·중견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고도화된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다. 불황기엔 공동 위기 방어 기제로 작동하고, 호황일때는 더 큰 성장을 일굴 수 있는 제조업 유기체를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중 하나.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들이 중소·중견 협력사들과 함께 지금 없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선행 연구 프로젝트를 많이 만들어보면 어떨까. 수십, 수백억원 규모의 연구 출연금은 대기업들에게 큰 부담도 아니다. 수요 침체와 설비 투자 실종은 당분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올해처럼 어려울 때가 오히려 선행 연구개발의 호기다. 물론 대기업들이 실적과 비용 절감에만 급급해 공급망에 포진한 후방 산업을 고사시켜서는 안된다는 대원칙이 전제 조건이다.
피해갈 수 없는 불황이라면 공급망 전반이 서로 쥐어짜기식 생존 경쟁을 벌이기보다 신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힘을 모아보자는 뜻이다. 시혜적 관점에만 머물지 않는 동반 성장, 경제 민주화 실천이기도 하다. 만약 창조경제론의 발상도 궤를 같이 한다면 참 반가울 것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