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P2P가 가져온 공생관계

콘텐츠 불법 유통경로로 악명을 떨치는 토렌트를 취재하는 도중에 재미난 소식을 접했다. 한 방송사가 P2P(개인간 파일 공유사이트) 등 웹하드 사이트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익이 지난해 200억원가량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방송사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차지하는 규모다.

과거 불법 유통으로 악명을 떨치면서 방송사 등 저작권자 공공의 적이던 P2P가 커다란 수익을 안겨줬다니 놀라운 일이다.

얘기는 이렇다. 이 방송사는 몇 해 전 웹하드업체와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 등 방송물 양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방식은 방송사와 웹하드 업체가 7대3 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로선 새로운 수익원 발굴뿐 아니라 인기 방송물에 대한 홍보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 일거양득인 셈이다. 음성화된 웹하드를 양성화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낸 것이다.

몇해전 만해도 P2P는 저작권 권리자에게 무조건 악이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불법 유통됐다. 피해 규모는 수천억원을 넘는다는 통계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방송사나 영화사가 큰 돈을 들여 제작한 작품을 TV나 극장에 올린 지 겨우 수시간 만에 불법으로 올려 유통하는 P2P는 악마적 존재였다.

유통구조가 다변화하면서 일종의 공생관계가 형성됐다. P2P와 저작권자가 서로 돕는 관계가 된 것이다. 시대 흐름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권리자와 유통자가 모두 한발씩 물러섰고 웹하드 등록제 시행 등 법의 테두리로 기술을 끌어오려는 노력이 병행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토렌트 역시 비슷한 행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원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음악이나 영화, 게임 등 다른 콘텐츠 산업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불법과 합법의 편가름으로 세상을 나누면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은 음지에서만 꿈틀대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법은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기 어렵다. 법과 원칙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술 변화에 맞게 법이 따라갈 수 없다면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 융통성있게 시장이 작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츠산업부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