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수에게 심판까지 맡겨서야

정부나 공공기관 연구용역 평가 공정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평가는 세상에 없다. 연구용역을 수주한 기업(기관)은 모르겠지만 탈락한 나머지는 대부분 불만이다. 이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탈락 원인을 연구해 다른 연구용역에 도전하는 기업도 있다. 공정하게 평가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 연구용역에 참여하는 기업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것은 어떤 분야건 경쟁기업이 평가자로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공정해야 할 평가에 경쟁기업이 평가자로 참석한다는 자체가 공정성 시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자는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하지만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선정되지 못한 기업은 기술정보만 경쟁사에 제공하고 탈락하는 우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스마트그리드 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목적으로 추진 중인 전력선통신(PLC)칩 검증사업이 평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이 발주한 `지중원격검침용 광대역 PLC 성능비교시험 시스템` 수행 사업자로 선정된 A사의 자격이 문제됐다. 과제는 퀄컴·마벨·파워챔프·크레너스 칩을 비교 평가한 후 우수한 칩을 선정해 국가 AMI 구축에 일부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선정된 A사가 파워챔프의 PLC칩을 공급하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공정성 시비도 문제지만 칩 제조사의 핵심기술이나 정보가 경쟁사에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일부 외산칩 기업은 AMI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A사에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평가는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선수에게 심판을 맡긴다는 것은 공정한 플레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해 관계자를 과제 평가에 철저하게 분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더 큰 문제는 과제 수행능력보다 가격을 낮게 써 낸 기업을 선정하는 한전의 입찰제도다. 이참에 입찰제도도 사업 수행능력과 비용을 고려해 더욱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개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