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꽃인 스타와 배우는 어떻게 다를까. 스타의 본산지인 할리우드의 예를 들어보자.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스타지만 배우는 아니다. 잭 니콜슨은 배우지만 스타는 아니다. 그럼 스타는 배우가 될 수 없을까. 톰 크루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스타로 출발했지만 동시에 배우로도 불린다. 스타는 팬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타의 생명주기는 그리 길지 않다. 이 때문에 모든 스타는 배우를 지향한다. 20년 가까이 스타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장동건이 한 CF에서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자. 그래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와 닿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태동 이후 대중문화 전 분야에서 `스타`라는 말이 쓰인 것은 1910년 이후부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인 스타는 과연 스스로 빛을 내뿜는 발광체인가. 아니면 문화콘텐츠 제작 과정의 산물이거나 관객의 욕망의 대상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팬과 스타는 미디어가 창조한 이미지를 두고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론(論)의 창시자 애드가 모랭은 “각 스타의 발밑에 하나의 예배당이 설립된다”며 스타를 향한 대중의 극단적인 숭배와 믿음을 강조한다. 영국의 영화학자 리처드 다이어는 “스타는 미디어 텍스트 속의 이미지들”이자 “할리우드의 생산물”이라고 정의한다. 한편 스타는 집합적 무의식, 대중의 꿈과 욕구, 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욕구를 표현해주는 장으로 읽히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비(Rain)나 이병헌 같은 한류스타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한국 대중들의 숨겨진 욕망과 무의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얼마 전 한류스타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조 2`를 관람했다. 그동안 아시아의 몇몇 톱스타들이 야심차게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번번이 서양인들의 고정관념에 근거한 뻔하고 시시한 배역을 맡아 낯이 뜨거웠던 경험이 적지 않다. 이 영화도 그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있지는 않지만 `달콤한 인생`이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에서 볼 수 있었던 어둡고 복잡하며 섬세한 눈빛과 표정을 이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편에 비해 그의 배역 스톰 섀도의 분량이 늘어났고 한층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발전된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이병헌 연기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영화 `달콤한 인생`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또래의 한국 연기자 중 모호한 감정의 흔들림과 그 흔들림을 자기 안에서 파장시키고, 걷잡을 수 없는 장렬한 파멸감을 섬세한 빛깔로 연기해야 하는 주인공 선우 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감히 이병헌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 `광해`로 사극 연기의 폭을 넓히고 스타시스템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병헌은 한류스타이자 자기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한 배우다. 스타가 되기 위한 변수는 `재능과 노력, 전문성과 운`이라는 분석이 있다. 자본과 시스템의 지원이 있었겠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할리우드 문을 두드리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아시아를 강타한 한류 덕택에 이병헌은 `운`까지 얻은 셈이다.
그동안 한류는 한류 스타들의 이미지에 크게 의존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K팝 아이돌 스타들이 한류를 대표하는 강렬한 이미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병헌의 경우처럼 스타가 대중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면 이미지를 뛰어넘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류가 스타의 이미지에만 기대지 않고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에 힘쓸 때, 한 순간의 `물결(Korean Wave)`로 끝나지 않고 지속가능한 글로벌 콘텐츠로 오래도록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수정 가톨릭대학교한류대학원 한류지식센터연구위원 cinemas8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