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세일 기간 모 의류매장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얇고 가벼운데다 보온 기능이 좋아 내복 대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히트텍`을 사기 위해서다.
“히트텍은 목재에서 뽑아낸 아크릴레이온 혼면과 혼성폴리에스터, 스판덱스사를 혼합해 발열·보온 기능이 있습니다.” 야마가타 요시 도레이 홍보부 주부(팀장)는 “단순한 속옷이지만 첨단소재 가공기술이 집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연구개발(R&D)의 성과라는 것이다.

1926년 일본 미쓰이물산은 신사업으로 레이온 시장에 뛰어들었다. 도요(東洋)레이온이 설립됐고 레이온 공장이 만들어졌다. 도요레이온은 1941년 나일론을 개발했고 1951년 나일론 원사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 수영복, 스키복, 속옷, 스타킹 등 의복 소재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1963년 사명을 도레이로 바꾼 회사는 이후 첨단 재료로 영역을 확대하며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교토역에서 전철로 20분가량 떨어진 시가현에는 도레이의 첨단소재 공장과 연구동이 있다. 일본 내 11개 제조시설 중 가장 오래됐지만 신제품 필름 테스트 라인을 비롯한 첨단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R&D도 이뤄진다.
◇유기합성화학·고분자화학·바이오기술 융합
도레이는 유기합성화학·고분자화학·바이오기술 세 가지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 기술이 융합해 만들어 내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중합·폴리에스터 기술, 혁신 기능 재료, 구조용 재료, 제사, 제막, 섬유 고차 가공, 기능막 기술 등의 기반이다. 각 R&D 조직은 공정 기술, 유기합성, 계산 과학을 공유하면서 제품을 개발한다. 최근에는 나노를 핵심 기술에 추가했다.
독자적인 제조 공정도 강점이다. `나노얼로이(NANOALLOY)`는 폴리머 여러 개를 나노미터(㎚) 단위로 미세 분산시키는 미세구조 제어기술이다. 일반적으로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폴리머를 혼합하는 공정과 달리 고분자재료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생활 곳곳에 소재 공급
도레이의 6개 사업부가 쏟아내는 제품만 해도 수천종이다. 섬유는 나일론, 폴리에스터, 아크릴 실과 방적사, 직물, 부직포, 인공피혁 등이다. 마이크로 섬유로 만든 인공피혁은 언뜻 봐서는 가죽이나 비단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기술력이 높다. 발수 기능을 개발해 스키복 방수 소재도 만든다.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섬유는 땅에 묻으면 완전히 분해가 된다. 내몽골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한 녹화 사업에 쓰고 있다.
ABS(아크릴로나이트릴·뷰타다이엔·스타이렌) 수지, PBT(폴리뷰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수지와 수지 성형품, 폴리올레핀폼, 폴리에스터·폴리프로필렌·PPS(고내열·내화학성 플라스틱) 필름과 필름 가공품, 합성섬유와 플라스틱원료, 제올라이트 촉매, 의·농약 원료, 동물 치료제 등은 플라스틱·케미컬사업부의 주력 품목이다.
`피카서스` 필름은 알루미늄 등 금속과 내구성은 유사하지만 훨씬 가벼운 소재다. 100㎛ 두께의 박막필름에는 폴리머 층이 약 1000장 가로·세로 교차해서 적층됐다. 금속 재질 같은 간접 반사 효과를 낼 수 있다. 투명하게 만들 수 있고 전파 투과성이 있어 터치도 가능하다. 각종 전자제품 케이스로 활용된다.
`토레리나`는 단열 필름이다. 건축물이나 자동차 내외장재, 모터를 싸는 절연재로 쓰인다. 반사필름을 이용한 도광판, 확산판, 태양전지 후면시트 등은 시장에서 선두권 업체다.
탄소섬유는 세계 처음 양산을 시작했다. 금속 대체 수지나 콘덴서, 분리막 등은 탄소섬유 복합재료 분야다. 환경·엔지니어링 사업에는 수처리 기능막, 건설산업 기기 부품이 있다. 담수화 필터, 정수기 필터 시장에서도 세계 1·2위를 다툰다. 패혈증 치료제, 인공투석기, 천연 인터페론 등 의약품은 라이프사이언스 사업부가 관장한다.
◇신흥국 개발, 지역 거점 제조로 글로벌화 가속화
도레이는 지역별 거점을 마련하고 제조시설도 현지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 내 관계사와 계열사를 줄이는 대신 해외 진출에는 적극적이다. 지난 2011년 인도에 인디아 사무소를 설립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부직포 공장을 건설했다. 한국은 첨단, 고기능성 제품의 주요 생산기지다. 일본 이외 21개국, 126개 사업소가 있다. 이전에는 신흥 개발국가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현지화를 했다면 지금은 첨단산업과 가까운 곳에서 협업하기 위해 진출한다.
지금까지 이 전략은 주효했다. 도레이의 지난해 전 세계 매출액은 1조5890억엔(약 17조5074억원)에 달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