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한국 휴대폰 시장에서 1위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지난 주 핀란드에서는 이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삼성전자가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노키아를 핀란드에서도 제쳤다. 스테펜 엡론 노키아 CEO가 “우리는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고 토로한지 불과 2년만이다.
요즘 CEO들을 만나면 불안감을 종종 호소한다. 하버드대 크리스텐스 교수가 주창한 `와해성 혁신(Distribution innovation)`이 이렇게 자주 목격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기존 시장과 기술을 교란하고 선도기업을 하루 아침에 실패의 나락으로 몰고 간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을 와해한 것은 이미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젠 아이폰 단일 모델로 세계를 제패한 애플의 `글로벌 스탠다드` 전략보다 삼성의 `글로칼리제이션(golocalization)` 전략이 더 위협적이다.
와해성 혁신의 대명사 `카카오톡`은 다시 뇌관으로 떠올랐다. 출시를 예고한 카카오톡 PC버전은 PC 메신저 시장을 한바탕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갈 기세다.
와해성 혁신은 전염성이 강하다. 혁신 사례가 늘수록 원리를 깨친 경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누가 어떤 `한 방`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CEO, 특히 선도기업 CEO들이 불안한 이유다.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제친다는 가정이 요즘처럼 허황되지 않게 들릴 때도 있을까.
중국 통신 시장을 들여다보면 위기감은 더하다. 유선 전화를 건너뛰고 휴대폰으로 직행한 중국 통신사들은 올해부터 롱텀에벌루션(LTE) 서비스에 사활을 건다. 가입자 7억2000만명을 보유한 차이나모바일이 시분할 방식 `LTE TDD`를 상용화하는 건 압권이다. 피라미드리서치는 차이나모바일의 가세로 2년 뒤 LTE TDD의 4세대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이 32.5%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주파수 분할 방식의 `LTE FDD`와 양강체제를 갖추는 셈이다. 불과 2~3년전만해도 와이브로냐, LTE FDD냐를 놓고 설전이 펼쳐지던 장면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도 통신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LTE TDD`가 사실상 금기어다. 정부가 밀어부친 `와이브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LTE TDD를 추진하려면 와이브로 주파수를 전환해야 한다. 책임론에 민감한 공직 사회에서 LTE TDD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누워서 침뱉기`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보자. 와이브로가 과연 어떻게 추진되었는가. 유력한 차세대 통신기술을 선점하면서 국산 단말과 네트워크 장비의 세계 석권을 꿈꾼 애국심의 발로였다. 당시 기술 우위론에서도 와이브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LTE TDD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익이 먼저다. 변화무쌍한 시장 환경에서 완전무결한 정책은 없다. 정책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카카오톡`이 탄생하기 전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2개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실패라기보다 노하우로 발전시켰다. 다행히 와이브로 기술 상당수가 LTE TDD와 유사하다.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속도의 리더십이다. 삼성전자와 노키아의 운명도 `타이밍의 미학`에서 갈렸다. 그런면에서 ICT전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모처럼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MB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의 느린 의사결정체제와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다.
적어도 2년뒤 LTE TDD 스마트폰을 석권한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제쳤다는 뉴스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 때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