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글로벌 소재 기업, 장기적인 안목이 100년 기업 만들었다

글로벌 소재기업 본사가 위치한 지역은 특별히 산업단지로 조성한 곳이 아니었다. 한적한 농촌,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고 마을은 작았다.

물적·인적 교류가 빈번하거나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나지 않는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재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회사가 점점 성장해 규모가 커진 것뿐이다.

선도적인 소재를 만들어 낸 사람이나 기업은 많다. 그렇지만 100년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성장을 일궈낸 곳은 흔치 않다. 여러 업체를 탐방하면서 기자는 공통점을 찾았다. 기다릴 줄 아는 문화다.

방문한 모든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나 주요 임원은 그 회사에서만 30년 넘게 재직했다. 코닝에서 만난 한 직원은 “소재회사는 웬만하면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12년 근무한 나는 신입직원(프레시맨)”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오랜 세월 축적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리엠은 대표 상품인 `포스트 잇`을 개발한 후 9년이 흘러서야 이 기술을 상용화했다. 광섬유는 1960년대에 개발됐지만 코닝이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만약 이 회사 직원들에게 한국 정보기술(IT)산업 내의 주요 기업처럼 단기 성과를 요구하면 어떻게 됐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프리미엄 스마트폰, 초고선명(UHD) LCD TV 제조사는 한국 기업이지만 그 속은 외국산 소재가 채우고 있는 이유도 그게 아닐까 싶다. 대규모 양산투자로 생산력을 끌어올려 수익을 내는 메모리반도체나 일반 부품은 국산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부품을 이루는 소재는 대부분 외산이다. 그나마 국산화가 많이 이뤄졌다 해도 디스플레이 소재 국산화율은 20%에 불과하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게 한국 대기업 임원이다. 한국 기업의 롤모델인 삼성전자는 몇 년 전부터 연말 정기인사뿐만 아니라 연중 수시 인사를 한다. 실적평가 기간이 짧을수록 눈앞에 있는 수익만 쫓게 마련이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기본기가 튼튼해야 한다. 모든 제조업의 뿌리는 소재다. 한국 제조업이 영속하는 길도 소재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글로벌 소재기업의 뛰어난 기술력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지속 발전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인 기다림의 경영철학을 체득해야 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