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실패 피하는 한국, 실패 권하는 미국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에 사는 지인이 오랜만에 귀국해 조촐한 저녁 자리를 가졌다. 직장 때문에 터전을 옮긴 지 10년이 훌쩍 지난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되새기던 중에 딸의 졸업식을 화제로 꺼냈다.

[데스크라인]실패 피하는 한국, 실패 권하는 미국

미국은 9월에 새학기를 시작해 이듬해 6월에 마친다. 당연히 졸업식도 6월에 열린다. 지인의 말솜씨가 워낙 좋은 덕도 있고, 졸업식 문화가 우리와는 사뭇 다른 재미도 있어서 귀가 저절로 쫑긋 세워졌다.

그가 말한 미국 중학교 졸업식의 특징은 많은 학생이 연단에 선다는 사실이다. 학생 대표 답사 정도로 끝나는 우리나라 졸업식과 달리 지인의 딸이 다니는 중학교 졸업식에는 5명이 넘는 졸업생이 자신의 지나간 학교생활을 얘기했다.

그들은 학생회장이나 전교 1등이 아니다. 남보다 뒤떨어진 실패를 이겨낸 학생들이다. 언어장애로 고생하다가 열등감을 딛고 다른 사람 수준의 소통 능력을 갖게 된 전학생을 비롯해 영어는 못했지만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이민 자녀, 휴일마다 조용히 자원봉사활동을 한 학생까지 다양했다.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작은 영웅`이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해 `우수한 학생=공부 잘 하는 학생`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지인은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성적표나 상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력과 경험을 인정하는 미국 사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더 강한 인상은 교장의 축사에서 받았다. 교장 축사에서 지인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 문장은 “You dont` fail as long as you learn from failure.(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결코 실패가 아니다.)”나 “Be persistent and don`t give up.(끈기를 갖고 포기하지 말라.)” 등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학교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서 경험을 쌓아라”다. 교장은 실패한 학생에게 벌을 주기는커녕 교사가 나서서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가 가장 큰 공부라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을 그 학교는 교사와 학생은 오롯이 실천해나갔다.

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벤처 정신`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한다. 우리 아이들은 한 번 실패를 만회하기 어려운 좌절로 배운다. 한 번 시험을 망친 전교 일등이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하고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국민에게 사죄의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는 실패를 딛고 글로벌 벤처를 만든 스타 CEO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곧바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기업과 CEO가 쌓은 기술과 노하우는 공중분해된다. 실패가 자산이 아니라 낙인의 주홍글씨로 새겨지는 사회에서 벤처 정신은 빛 좋은 개살구다.

박근혜 정부가 속속 내놓은 스타트업 지원 정책은 반갑다. 한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 제도다.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거나 돈을 빼돌리지 않았다면 실패한 스타트업 CEO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다시 줘야 한다. 한국이 계속 실패를 피한다면 최소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조 경제만큼은 실패를 권하는 미국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