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밴(VAN) 수수료 체계가 23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그동안 밴사는 카드사와 계약을 하고 카드사로부터 승인 중개, 매입데이터 처리비 명목으로 건당 100~140원의 대행 수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앞으로 밴사는 카드사가 아닌 가맹점과 대행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금융당국, 카드 밴 수수료 체계 가맹점-밴 직계약제로 개편](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7/04/449553_20130704165224_246_0001.jpg)
4일 관계기관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수수료 정산 주체를 카드사-밴이 아닌 가맹점-밴 `직계약` 체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밴 수수료 개편안을 확정, 카드사와 밴사에 통보했다. 이달 예정된 공청회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을 확정·발표할 계획이다.
밴 수수료 개편 골자는 밴 수수료를 가맹점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카드사로부터 대행 수수료를 받았던 밴사는 앞으로 170만여곳 가맹점을 두고 수수료 입찰경쟁을 벌이게 됐다. 가맹점이 가장 낮은 수수료를 제시한 밴사를 선택하고, 이를 카드사에 통보하면 그 수수료를 카드사가 내주는 형태다.
KDI는 이 같은 자율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밴 수수료를 상당 부분 인하할 수 있고 가맹점 또한 일방적인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밴 수수료 계약 주체가 바뀌면 그동안 건당 수수료를 부과했던 정액제 방식도 정률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 같은 개편 체계가 현실에서 가능한지다. 개편안을 카드사와 밴사에 공개했지만 대부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밴 업계는 출혈경쟁으로 인해 역마진까지 나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 정산 수수료를 카드사가 아닌 가맹점이 책정한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카드 업계는 우선 좀 더 지켜보자는 상황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밴사가 카드사와 계약을 하고 대행 수수료를 받으면, 대형 가맹점에 리베이트로 퍼주는 구조가 만연했다”며 “수수료 계약 주체가 가맹점으로 바뀌면 밴사 간 경쟁 구도가 형성돼 장기적으로 대형 가맹점에만 혜택이 가는 구조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카드사와 수십년간 대행 계약을 한 밴사가 계약 주체가 바뀌면 오히려 가맹점 눈치를 보는 왜곡된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사실상 밴사를 카드 업무의 대행사가 아닌 개별 독립사업자로 인정하게 되면 대형 가맹점에만 오히려 이득이 된다는 말이다. 한 밴 업계 관계자는 “가맹점-밴 직계약 구조가 되면, 카드결제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밴에 대형가맹점은 갑인데 과연 합리적인 밴 수수료를 제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리베이트와 별개로 카드 대행 수수료까지 턱없이 낮은 수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밴협회 관계자는 “카드 대행 업무를 별도 서비스로 빼낸다면 가맹점과 대행 업무를 공조해야 하는데, 밴사와 카드사 간 원활한 업무협조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중소형 가맹점에도 가이드라인 없이 밴 수수료 계약을 맡기면 대형가맹점의 권력만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