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99`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조를 이야기할 때 흔하게 예시되는 비율이다. `대기업군 수는 1, 중소기업 수는 99`. 반면에 `대기업군 매출은 99, 중소기업군 매출은 1`.
가전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전업체 수는 2736개다. 이 가운데 300인 이하 중소기업은 2722개로 99.4%다. 정작 시장에서는 중소기업 가전제품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무려 3000개에 육박하는 셈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전자제품 강국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의 공이 절대적이다. TV·휴대폰 등이 세계를 석권하면서 `SAMSUNG` `LG`는 자랑스러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물론 `KOREA`라는 국가 브랜드 격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대기업이 직접 뛰어들기에는 한계가 있는 틈새 중소형 생활 가전기기 시장이 한국 가전산업의 사각지대가 돼 버렸다. 일부는 해외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 탓만은 아니다. 다만 대기업 제품 중심의 산업 구조는 국산 중기 가전의 유통 및 AS 결핍을 낳아 판로 확대 어려움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정황은 있다. 대기업과 정부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상생으로 국내 새로운 틈새시장은 물론이고 해외시장 진출까지 가능해 국가 차원의 가전산업 파이를 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가전산업 육성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책정된 예산규모는 미미하지만, 지금까지 정책수립에서 뒷전이었던 중소형 가전 분야에 대한 최초의 정부 프로젝트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정부 프로젝트는 상품기획, 기술, 마케팅 등을 모듈로 구성한 `중소형 가전지원 플랫폼(KHAP·Koera Home Appliance Platform)`을 구축, 소형가전 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골자다. 물론 지원할 결과물을 매뉴얼로 만들어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목표다. 수출형 중견가전업체로 자리 잡은 모뉴엘, 독자기술로 세계 최초 드럼날 면도기를 개발한 조아스전자 같은 회사를 더 발굴해 보자는 취지다.
국내 가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은 극히 일부에서만 나타난다. 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사실상 협력관계 구축이 양측 모두에 효과적이다. 실제로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코리아 프리미엄` 현상은 중소기업에는 큰 기회로 작용한다. 1980년대, 1990년대 소니, 파나소닉 등이 만들어 놓은 `재팬 프리미엄`이 일본산이면 일단 신뢰하고 보는 기현상을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자명해진다. 지금 세계 가전시장에서 코리아 브랜드가 그렇다. 이 가전강국 `코리아 브랜드 프리미엄`을 살릴 때다.
다시 `1 대 99`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국가 산업 전반으로 볼 때 가전산업에서의 이 비율은 중요하지 않다. 비율은 같더라도 그 절대 규모를 키우는 것이 한국 가전산업은 물론이고 선진국형 저성장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제다.
이런 생각도 가능할 것 같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중소형 가전 육성 사업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금과 역량을 보태 국내외 시장에서 `윈-윈`의 길을 모색한다면, 명분과 실리가 모두 살아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의 진정한 성공 모델을 창조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심규호 전자산업부장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