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를 말한다]강성모 KAIST 총장 "상처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이 창조경제 정신"

아무도 침범하지 못했던 풀밭이 있다. 푸른 빛깔을 내지만 잎은 날카롭다. 가시덩굴도 가득하다. 길이 없는 만큼 풀잎을 밟고 걸어가야 한다. 스쳐 지나간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강성모 KAIST 총장이 설명하는 첫걸음(First Mover)은 상처의 아픔을 무릅쓰고 걷는 용기다. 창조경제를 위해 뛰는 것은 누군가 밟고 지나간 길을 따라 걷는 것(Fast Follower)이 아니다.

[창조경제를 말한다]강성모 KAIST 총장 "상처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이 창조경제 정신"

그는 1969년 우리나라를 떠났다. 연구 목적으로 몇 차례 들어오긴 했지만 자리를 잡은 것은 KAIST 총장으로 임명되고 나서다. 공백이 있었던 만큼 강 총장의 눈엔 우리나라가 겪은 변화가 한번에 들어왔다. 바로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로 대변되는 눈부신 성장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강 총장은 9일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정체돼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우리나라는 교육열도 뜨겁고 지식수준도 높습니다. 그러나 미래 역군이 될 젊은 사람은 일자리가 없어 허덕입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IT·선박 등 선진 산업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데 실업률이 높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못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先進). 먼저 나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남들이 해놓은 것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첫발을 디디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강 총장은 창조경제를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안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워하는 것은 창조 정신이 아니다”며 “미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용기 있게 도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조경제 교육부터 바꾸자”

창조경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도대체 정의가 무엇인가 의문이 많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사업화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개념이 잡힌 후에는 다른 질문이 쏟아졌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샘을 파서 물이 솟구치게 하는 방법을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연구중심대학 총장은 역시 교육에서 해답을 찾았다.

“창조경제를 이끌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입니다. 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지는 것도 포함합니다. 강을 생각하면 쉽죠. 산에서 샘물이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로 나가는 겁니다. 대학교육은 하천입니다. 학생들이 넓은 바다로 나가기 직전입니다. 상천, 샘은 가정교육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교육 문화와 정신이 시작되는 곳은 집안입니다.”

창의와 도전은 불가분 관계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정교육은 학생 마음에 도전 정신을 심는 게 부족하다는 것이 강 총장의 생각이다. 자기 자식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편안한 삶을 안위했으면 하는 `자식 사랑`이 오히려 부작용이 되는 셈이다.

강 총장은 “집안에서 안정만 찾는다면 학생이 커서도 뭐든지 안일하게 생각하게 된다”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것을 `위험`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시대 창업이나 벤처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미래를 이끌 젊은 인재는 보신주의란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강 총장은 “이 학생들에게 손 내밀어 끌어올리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창조경제는 다양성을 밑바탕에 두고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모난 돌은 망치로 맞는다. 강 총장은 튀어 나와 있는 것을 깎아 평평하게 만드는 평준화 요구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넘지 못했던 벽을 뚫고 간다는 것”이라며 “다이아몬드처럼 뾰족한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총장이 창조경제에 어울리는 인재를 `모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우리가 똑똑하다고 하는 학생들이 정말 뛰어난 인재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실수를 적게 하도록 트레이닝된 인재와 `남다른` 차별성을 가진 인재는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에 대해 규제를 두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좋은 평준화가 아닙니다. 하향평준화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타가 나타나서 모두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향평준화 체계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력을 가진 학생을 틀림으로 규정한다면 사회는 이 틀림을 수정하려 들 것이다.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못할망정 제약을 거는 셈이다. 강 총장은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창조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양성 인정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1m 높이 허들이 있다. 누구나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허들 높이를 2m로 높이니 뛰어넘지 못했다. 강 총장은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안정을 위해 1m 기준으로 맞춘다”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독려해야 하는데 잘라내는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모두 1m 허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현실은 GDP 2만달러에서 정체된 우리나라와 닮았다.

강 총장이 취임 후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도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가 KAIST 학생에 대해 밖에서 듣는 이야기 가운데 대부분이 “똑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재교육, 기숙사 생활의 병폐로 개인주의적이란 평가를 받을 때 강 총장은 안타깝다고 느꼈다. 공부에 집중하면 바쁘고 남과 협동을 하지 않으려는 풍토를 소통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강 총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창조가 시작된다”며 “뛰어난 것은 더 뛰어나게 발전시키는 첫 실마리는 소통”이라고 말을 맺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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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