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산업 중심이자 제조업 본산으로 불리던 디트로이트가 파산했다. 한때 인구 180만명을 기록했고 주민 1인당 소득도 미국 최고 수준이었다. 잘나가던 디트로이트의 쇠락은 미국 자동차 산업 몰락과 뗄 수 없다. 디트로이트에 본거지를 둔 미국 자동차 빅3인 GM·크라이슬러·포드가 1960년대 일본 자동차에 밀리기 시작한 게 쇠락의 단초가 됐다. 디트로이트는 빅3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평정하던 무렵에는 남부럽지 않은 도시였다. 일본 자동차 업체에 한 방 먹고 위축된 빅3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공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 일자리가 줄었다. 인구도 1980년대 10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더니 지금은 70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팔리지 않는 집과 사무실, 텅 빈 공장이 늘면서 공동화현상이 가속화했고 세수가 줄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180억달러(약 20조8000억원)의 장기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렀다.
![[ET칼럼]자동차 왕국 美디트로이트의 교훈](https://img.etnews.com/photonews/1307/456112_20130721130406_934_0001.jpg)
디트로이트의 파산은 산업의 흥망성쇠가 도시나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디트로이트를 파산에 이르게 한 자동차 산업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제 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크고 무겁고 연비가 낮은 미국 자동차는 연비·가격·디자인이 월등한 일본 자동차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세계 1위를 즐길 줄 만 알았지 소비자가 투박한 제품을 멀리하기 시작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뼈아픈 구조조정과 글로벌화 정책으로 재기에 나섰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는 만만치 않다. 그러는 사이에 디트로이트는 저물었다.
미국은 자타공인 산업원천기술·소프트웨어(SW) 강국이다. 빅3가 일찌감치 원천기술에 SW를 접목해 변신했다면 어땠을까. 빅3도 애플처럼 하드웨어(HW) 기술기반에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을 결합했으면 또 다른 자동차 산업 시대를 이끌었을 것이다. 연비가 높은 소형차 생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거나 세계적 추세가 된 친환경자동차(하이브리드카·수소연료전지자동차·전기자동차 등) 출시를 당겼다면 상황은 달라졌다.
산업과 SW를 접목하는 융합이 대세다. 산업은 다른 산업이나 학문·이론과 융합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늘렸다. 우리 산업 역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우리는 선진국을 모방하고 따라잡는 2등 전략으로 선진국 문 앞까지 왔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부동의 세계 1위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데 필요한 핵심 제조장비는 미국·일본·독일 수입 제품이 대부분이고 휴대폰 역시 핵심 칩은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유무선 인터넷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지만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 장비는 우리 기술이 아니다. 진정한 세계 1위가 되려면 산업을 선도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퍼스트 무버나 창조경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산업 간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최근 열린 `에너지테크 혁신포럼`에서 한 SW 전문가는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여러 번 좌절했다”고 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경쟁력을 끌어올린 통합운영체계인 선박공간네트워크(SAN)도 처음엔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대화로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전력·국방·의료산업 등 폐쇄적 분야는 융합과 혁신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융합은 산업의 새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촉매다. 이질감 때문에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 머물러 있으면 자동차의 디트로이트로 전락하는 일 밖에 없다. 일단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시도하자.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