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조광조인가, 중종인가

조광조는 조선시대 `개혁 아이콘`이다. 나이 서른에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자마자 “정당한 언로를 막는 사헌부와 사간원 전체를 해임해달라”는 상소를 올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관료를 해임시켰다. 중종반정 정국공신 117명 가운데 76명의 공신칭호까지 박탈했다. 훈구파 기득권 세력이 풋내기 관료 한 명을 못 이겨 오금조차 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붕당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탄핵 당해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불과 38세의 젊은 나이였다.

[데스크라인]조광조인가, 중종인가

그렇지만 그의 개혁 사상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렬했다. 조선 사림의 `정신적 고향`과 같은 존재였다. 조광조의 개혁을 끝내 지지하지 못한 중종은 `나약한 임금`으로, 때로는 `배신자`로 불렸다.

그런데 하급 관료에 불과했던 조광조가 개혁의 화신으로 부상한 힘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당시는 반정 성공 후 반정공신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아무리 걸출한 인물 조광조라도 임금인 중종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광조를 혁신가로, 또 반역자로 만든 주체는 바로 나약한 임금 중종이었다.

최근 청와대발 첫 개각설이 뜨거운 감자다. 대통령이 일간지 논설실장과 오찬에서 한 발언이 진원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문성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며 “참고로 했다가 적합한 자리로 변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일부 참모나 장관이 8월 전격 교체될 수 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관가가 다시 초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새 정부 출범 후 불과 넉 달 만에 인사설까지 터져 나온 것은 박근혜정부의 개혁이 뜻대로 잘 안 된다는 방증이다. 혁신 테마로 내세운 `경제 민주화`와 `창조경제`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경제 민주화와 창조경제는 한국 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실업 문제를 풀 키워드다. 국민의 기대가 크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 개혁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이 막강한 정권 초반에도 이 정도면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성급한 평가까지 나온다. 대통령이 불과 넉 달 만에 `현대판 조광조`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조광조 같은 걸출한 인물을 찾으면 박근혜정부의 개혁이 순풍에 돛을 달 수 있을까.

대통령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당장 창조경제 실행전략을 만든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은 요즘 답답함을 토로한다. 언론에서 `눈에 띄는 혁신이 없다`고 몰아붙이지만, 마땅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신규 사업이 사실상 원천봉쇄 된 기획재정부 예산편성 메커니즘에서 창조경제 새 사업은 꿈도 못 꾼다. 소프트웨어종합학교, 정보통신기술진흥원 등 일할 조직을 만드는 것도 예산에 발목이 잡혔다. 창조융합 과제는 고질적인 부처 칸막이에 가로막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조경제 한계론까지 제기된다.

중종의 후광을 업고 질주한 조광조의 개혁 드라이브와 대비된다. 중종은 언론 삼사 간부를 모조리 탄핵하자는 조광조의 상소를 전격 받아들였다. 과거제까지 개편해 조광조 개혁을 지지할 사람을 대거 발탁했다. 물심양면으로 조광조를 도왔다.

새 정부 개혁이 표류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개혁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조광조인가, 중종인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