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워싱턴포스트를 부탁해요, 베조스

[데스크라인]워싱턴포스트를 부탁해요, 베조스

6일 새벽에 나온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소식은 세계 미디어 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로 현직 미국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유력 신문이 경영난 탓에 매각을 결정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인수 주인공이 세계 최고 경영자로 꼽히는 베조스라는 점이 더 화제를 모았다.

수많은 미디어가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를 분석했다. 다수가 올드 미디어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내다봤다. 그 배경은 헐값에 가까운 가격 때문이다.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에 지불하는 대금은 2억5000만달러다. 20년 전 뉴욕타임스의 보스턴글로브 인수 가격 11억달러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올해 야후가 텀블러를 살 때 11억달러를 투자했다. 설립 6년째인 소셜미디어 기업 가격이 136년 전통의 올드 미디어 네 배를 넘는 게 현실이다.

올드 미디어의 쇠락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하다. 비디오 대여점과 CD가 사라진 이유와 같다. 그 자리는 주문형 비디오와 음악 스트리밍이 차지했다. 하지만 영화와 음악은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단지 담는 그릇이 바뀌었을 뿐이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전달하는 수단은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점차 비중이 이동하겠지만 신뢰와 독창성을 가지는 한 뉴스의 생명은 시대를 불문하고 영원하다.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자체보다 앞으로의 혁신이 더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가진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베조스가 어떤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할지 궁금하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미디어 업계가 베조스의 행보에 눈과 귀를 집중할 것이다.

아직 섣부른 판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워싱턴포스트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지금까지 베조스가 보여준 인터넷 유통 노하우는 발군이다. 콘텐츠 산업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인터넷 서점에서 시작한 아마존을 이제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끌어올렸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의 입맛에 딱 맞는 상품을 제시하는 마케팅은 아마존을 따라갈 업체가 없다. IT 인프라와 과금 시스템, 단말기, 온라인 장터까지 생태계 구성 요소를 다 갖췄다. 뉴스 유통의 혁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키울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정치적 영향력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투자`라고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정치 1번지 워싱턴에서 여론을 선도한다. 독점 논란에 시달리는 구글이나 개인정보보호 이슈로 골치가 아픈 페이스북에 이어 아마존도 세금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전자상거래 과세를 강화하자는 이른바 `아마존세`가 몇몇 주에서 논의됐다. 독자의 신뢰를 잃을 무리수는 두지 않겠지만 워싱턴포스트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상당하다.

콘텐츠 유통에 일대 전기를 마련한 베조스가 IT를 활용해 뉴스의 가치를 높여 미디어 산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위기에 빠진 세계 올드 미디어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상이 생긴다.

사족이지만 이번 거래는 워싱턴포스트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15년 전만 해도 80만을 웃돌던 워싱턴포스트 발행부수는 현재 50만 아래로 떨어졌다. 수익은 6년 연속 하락했다. 지난해만 4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신문을 판 신문사가 뭘 먹고 살까`라는 걱정은 기우다. 워싱턴포스트사 매출에서 워싱턴포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수익 역시 신문은 적자지만 방송과 케이블TV 부문은 뚜렷하게 흑자를 낸다. 자본시장도 워싱턴포스트사의 결정을 반겼다. 매각 발표 전 560달러를 밑돌던 주가는 현재 590달러 안팎으로 상승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