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식재산 전문가의 본질을 읽는다” 특허분쟁이 세계무대로 확전되면서 우리 기업이 진출한 주요 국가 IP 제도와 인프라,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주요 국가의 IP 생태계가 우리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전자신문은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WIPA)`와 함께 세계에 흩어져있는 IP 전문가의 지식과 정보를 한 곳에 모았다.
![[글로벌 IP 현장]<1>삼성·애플 특허분쟁에서 ITC가 주는 메시지](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8/27/469799_20130827144731_638_0001.jpg)
지난 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의 일부 제품이 애플의 특허 두 건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애플 특허를 침해한 삼성전자 제품의 수입·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삼성 특허를 애플이 침해한 것과 관련한 애플 제품의 수입·판매 금지조치에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권(Veto)을 행사한 것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25년 만에 대통령이 ITC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듯 삼성과 애플의 ITC 특허분쟁이 미국 내 많은 기업의 특허침해소송 전략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ITC 특허전쟁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ITC는 특허침해소송을 다루는 연방법원이 아닌 대통령 직속의 준사법적 기구(quasi-judicial agency)다. ITC에 특허침해를 제소하는 기업은 특허침해소송으로 사법부 판결을 얻어 특허분쟁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ITC에 제소해 경쟁사의 제품을 시장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이 법원 결정으로 얻는 것과 ITC 결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기업이 연방 법원이 아닌 ITC에 제소해 얻는 이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ITC 결정이 연방법원보다 훨씬 빠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둘째는 특허를 침해한 제품의 수입·판매를 금지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ITC를 이용한 소송전략은 한 제품 전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 특허 침해를 증명하더라도 수입·판매를 금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전문가 사이에서 비교적 최근에 떠오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ITC 수입·판매 금지 결정에 오바마 행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이번 ITC 결정으로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특허권 주장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다.
ITC의 결정과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각국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지 논쟁 역시 미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프로먼 미국 통상대표부(USTR) 대표가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미국 경제와 미국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다는 내용 역시 해석에 따라서는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보호무역주의로 미국이 특허법률 시장의 매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미국 특허법률 서비스 시장 위축과 단순히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다.
미국 언론이 밝힌 바와 같이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은 사소한 특허침해 여부에 따라 제품의 수입과 판매가 제한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퀄컴과 같이 특허 라이선스 계약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은 무역기구나 법원에서 경쟁사 제품의 특허 침해에 수입·판매금지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특허 가치가 계속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TC 소속 변호사였고 현재 네브라스카 법과대학에 재직중인 쉐퍼드 교수도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결정에 특허 가치가 법원의 말, ITC의 말, 백악관의 말에 따라 매일 바뀌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프로먼 대표 역시 ITC 권고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이번 결정 시 ITC로 보낸 공개서신에 “특허권 보유자는 법원을 이용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포함돼 있다.
ITC 결정으로 미국이 특허소송 시장으로써 현재의 지위를 잃거나 기업 특허권 보호에 인색해질 것이라고는 여겨지지는 않는다. 미국 정부 결정을 특허권 오남용과 특허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정책기조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제품 일부분의 사소한 특허침해만 밝혀내면 그 제품 전체의 수입·판매금지 결정을 받아낼 수 있었던 여태껏 상대적으로 손쉬운 ITC를 이용한 전략보다는 연방법원 특허침해소송을 이용해 손해배상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특허권을 주장하라는 일종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함윤석 미국 로하트만햄앤버너(LHHB) 대표변호사 yham@ipfi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