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제 발등 찍는 한국, 상술 날개 펴는 중국

[데스크라인]제 발등 찍는 한국, 상술 날개 펴는 중국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하반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IFA 2013. 단연 화제를 모은 것은 중국 업체들이 초고화질(UHD) TV를 대거 선보인 일이었다. UHD TV는 디스플레이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지난해 국내 업체들이 세계 처음 상용화한 첨단 제품이다. 1년도 채 안돼 중국 업체들이 쫓아 왔다니 그 저력이 놀랍고 두렵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중국은 불과 5년전쯤만 해도 TV용 대면적 LCD 패널조차 만들지 못하던 곳이었다. 이제 세계 최대 TV 시장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 힘을 앞세워 UHD TV를 양산하고 있고, 꿈의 디스플레이라는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빨리 추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이유중에서도 한국의 `공`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잘라 말하자면 우리가 사람과 기술을 갖다 바쳤다는 뜻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 중국 BOE의 전신인 하이디스 시절부터 전문 인력들이 중국 현지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과 LG에서 퇴출당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상당수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로 이직했다. 지금 중국에는 적어도 수십명의 한국 전문가들이 현지 디스플레이 업체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퇴직후 최소한의 먹거리도 보장받지 못한 그들에게 `국익` 운운하는 건 배부른 타령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중국 기여도는 이뿐 아니다. 디스플레이 시황이 악화되면서 지난 몇년간 국내 설비 투자는 사실상 실종됐다. 투자 가뭄에 생존의 위기를 겪는 소재·부품·설비 등 국내 후방 산업계는 중국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로지 중국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나홀로 호황을 누리며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삼성·LG가 협력사들을 보호해 줄리 만무하다. 이 과정에서 첨단 소재·부품·설비의 노하우와 기술을 입 벌린 중국에 고스란히 내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한국 협력사를 대상으로 판가를 후려치고 과도한 기술 이전을 요구하려 한다. 예전 우리 대기업이 저지른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따라 배우고 있는 지금 현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근 들려오는 중국 수출 소식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이 와중에 삼성과 LG는 기술 유출 공방의 화살을 오로지 상대방에만 돌리기 급급하고, 협력사들 또한 안중에도 없다.

도대체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중국에서 후한 대접을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몇 년새 중국의 기침 한번에 몸살을 앓는 처지가 됐다. 결국 사람 소중한 줄 모르고, 협력사 귀한 줄 모르는 우리의 자업자득이다. 우스갯 소리로 몸에 피가 아닌 돈이 흐른다는 중국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특유의 상술로 그 약점을 파고 들었는지도 모른다.

비단 한국이 아니더라도 거대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산업계가 진정 국익을 위하고 공생의 원칙을 견지했다면 적어도 추격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었다. 디스플레이 산업만이 아니다. 정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한국 첨단 제조업이 처한 현주소다.

더 큰 걱정은 앞으로다. 이미 겪은 과오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의 추격과 위협을 극복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고민은, 그래서 오롯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