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에너지융합이 3차 산업혁명

[데스크라인]에너지융합이 3차 산업혁명

음식한류의 대표선수는 역시 비빔밥이다. 날 것도 익힌 것도 아닌 중간 소재들이 서로 뒤엉켜 `맛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최근 짜파구리도 인기였다. 짜장 라면과 우동 라면을 섞어서 끓인 혼합라면이다. 관련 기업의 매출은 덩달아 상승했다. 일부 대형마트와 소매점에서는 섞어야 하는 두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비빔밥과 맛의 차이는 있지만 성격이 서로 다른 재료들을 섞고 비벼 제3의 맛을 낸다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없다.

섞는 문화가 단지 음식에만 국한될까. 경제도 섞고 비비는 게 대세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기조는 창조경제다. 그 중심에는 융합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오픈마켓이 고속성장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유통이 섞여 융합시장을 탄생시켰다. 전자상거래로 시장과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중소상인들은 정보기술(IT) 기반 판매 플랫폼으로 새로운 판로환경을 만들었다.

최근 `ESS-신재생에너지 융합포럼`이 출범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신재생에너지를 섞어 분산형 전원을 통한 전력난 극복과 신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이다. 에너지 융합으로 다가올 글로벌 3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려는 첨병 역할도 숨어 있다.

혹자는 두 분야 모두 기술과 가격경쟁력에 있어 효율성이 떨어져 혼합해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 ㎿당 ESS 가격은 15억원을 상회하고 태양광발전 역시 ㎾당 250원을 웃돈다. 석탄 67원, 원자력 39원에 비하면 턱없이 비싼 가격이다. 하나의 시장 형성도 어려운데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두 분야를 합쳐 놓으면 시장은 더욱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경제논리다.

하지만 산업융합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모습이 극히 일상적이지만 14년 전에는 꿈도 못 꿨다. 당시 휴대폰에 카메라를 탑재한다는 이야기를 시장은 믿지 않았다. 지난 2000년 삼성전자는 애니콜 디지털카메라폰(모델명 SCH-V200)을 출시했다. 높은 가격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최초의 카메라폰이다. 지금은 카메라폰이 아니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디지털카메라 기능을 넘어서는 스마트폰이 100만원 이하다. 기술과 가격경쟁력 교집합에서 만들어 낸 창조적 결과물이다.

ESS와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만큼 가격이 비싸고 기술개발이 늦어지고 있지만 카메라와 휴대폰의 융합처럼 시장 활성화는 머지않아 보인다. 기대보다 빠르게 배터리 가격이 내려가고 있고 전기요금도 이들 두 산업의 융합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은 ESS와 신재생에너지 융합 보조금으로 초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전자상가가 즐비한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는 이미 3㎾ ESS와 3㎾ 태양광을 결합한 B2C 제품이 매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본 소비자의 구매가 늘고 있다. 가정 내 빌트인으로 각광 받으면서 설치 시장과 디자인산업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극과 극을 합하면 극성이 없어질까. 물리적 특성은 극과 극을 합하면 없어질지 몰라도 인류의 산업과 문화는 극과 극이 만나 새로운 축을 만들고 발전하고 있다. 팝과 오페라가 합쳐져 팝페라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융합의 결과물은 최종적으로 제품이 아닌 소비자에게 편리함과 편익이라는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여야 한다. 비빔밥과 카메라폰의 탄생이 시사하는 바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