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책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

[ET단상]책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지난여름 한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이 주관하는 미국 본사 방문행사에 다녀왔다. 반도체기업 퀄컴이 국내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을 미국 샌디에이고 본사로 초청하는 `퀄컴 IT 투어`였다. 최첨단 모바일 기술을 소개하고 글로벌 회사의 기업 문화를 체험하는 자리다.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매년 공모를 통해 참가자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30명의 이공계 학생들이 선정됐다. 투어 참가자의 출신 면모를 살펴보면 국내외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도 있고, IT업계와 정부기관, 법률사무소, 경영컨설팅기업 등에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이 경험을 살려 미국 본사에 취직해 엔지니어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본사 방문으로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함께 간 학생들은 이공계에 속해 있다는 점은 모두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전공을 하고 있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동료와 선후배를 수십명 만나게 됐다. 또 이동통신 분야의 비전과 가능성도 알 수 있었다.

참가자 중에는 나와 같이 이동통신 분야 연구를 하는 학생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 UX 디자인, 회로 설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다. 전공은 다를지언정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이공계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이런 상황에서 같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조언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퀄컴 본사에 방문했던 이틀 동안 이공계인으로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퀄컴은 머지않은 미래에 선보일 새로운 기술에 놀랄 만큼 역량을 투입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퀄컴의 주력 제품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모뎀(베이스밴드)을 포함한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상당했다.

이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설명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한국 이동통신 발전과 함께 성장한 회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참가 학생들은 퀄컴 최고경영자(CEO)인 폴 제이콥스 회장과 만난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이번 행사에 열의를 가졌다.

제이콥스 회장은 간담회 자리에 직접 나와 학생들의 발표를 들었다. 그는 상황 인식 컴퓨팅, 만물 인터넷, 입는 컴퓨터 등 다양한 최신 기술에 대한 각각의 연구 성과에 대해 일일이 첨언을 해줬다.

언론과 인터넷상에서만 접하던 글로벌기업 수장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발표 준비 과정에서 도전 정신도 갖게 됐고, 이공계 진로에 대한 열정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생생한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다.

방문 기간 중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들과도 만났다. 그들은 앞으로 이공계 출신 학생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친절하게 조언해줬다.

샌디에이고에서 보낸 일주일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 이제는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진다. 참가자에게 이 투어는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해외 기업이 한국의 학생들을 초청해 연구개발(R&D) 의지를 북돋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됐으면 한다. 부정적인 인식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와준 자리였다.

이재현 서울대 대학원 전기정보공학부 석·박사 통합과정 sacrifice57@maxwell.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