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학기술인 열전! 멘토링 레터]“노력이 기회를 만나면 운이 된다”

To.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려는 학생에게

대학원 지도교수가 박사과정 마지막 연차일 때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미나서 발표하던 연구내용 중 어떤 물리적 현상을 물어보셨는데, 내가 잘 답변을 못했나 봅니다. 교수님은 “지금은 뭘 몰라도 덜 창피하지만, 박사 받고 나서는 뭘 모른다는 사실이 굉장히 창피할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대놓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여성과학기술인 열전! 멘토링 레터]“노력이 기회를 만나면 운이 된다”

그 당시에는 그 말씀이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씀이 절절이 와 닿았습니다.

아직 학생이고 어린 시절에는 뭘 몰라도, 실수를 저질러도 용서가 됩니다. 이제는 내 전공 분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몰라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원 시절은 최대한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의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시절이 지나면 누구도 그렇게 열심히 훈련을 시켜주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아직 학생일 때는 부지런히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학생은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던 2006년 2월, 임신 8개월 부른 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박사과정 시절에 결혼을 했고, 박사 졸업을 하고 두 달 후인, 그 해 4월에 내 생애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박사 후 과정(포스닥) 시절은 드라마틱하게도 내 아기와 함께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한 점 망설임 없이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 순간을 꼽을 겁니다.

그만큼 인생에서 가장 엄청난 변화가 바로 포스닥으로 세상에 막 나오려고 할 때 동시에 벌어진 셈이죠. 만약 아이가 아니었다면, 외국으로 나가서 좀 더 넓은 세상에서 포스닥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던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저히 외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울 수도 없을 것 같았죠. 또 다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아닌 순전히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국내 포스닥으로 처음 직장을 결정했습니다.

KAIST 자연과학연구소에서 포스닥을 처음 시작했고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면서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내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아이를 낳고 몇 개월은 두문불출하고 집에서 쉬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 막 포스닥을 시작해 그냥 집에서 아이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경력에서 단절된 기간이 남아 있는 것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신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탄력적으로 출근을 하면서, 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경력이 끊어지는 기간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그때까지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에게 그런 노하우들을 알려주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오기 전, 천문연에 들어오려면 하늘 문이 열려야 한다는 얘기를 농담 삼아서 하곤 했습니다. 국가연구소에서 정규직 채용은 정말 가끔이고, 아주 극소수의 숫자만 뽑았기 때문에 입사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뜻이었죠.

일단 사람을 많이 알아두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가고자 하는 직장이 있다면, 미리미리 안면을 익혀두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둬야 포스닥으로 가기에도 수월합니다. 포스닥으로 자리를 일단 잡고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도 생깁니다. 사실 어디를 가더라도 인정을 받으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가수 싸이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싸이가 2012년에 대박이 난 사실 때문에, 일부 네티즌이 운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힘을 준 한 개의 댓글이 바로 “노력이 기회를 만나면 운이 된다”는 글이었답니다. 나도 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싸이의 그 말은 내게도 큰 힘이 됐습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으면, 기회가 온다 한들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죠.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올 기회는 `행운`이 될 것입니다.

From.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선임연구원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www.wis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