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일탈의 즐거움과 창조경제

[콘텐츠칼럼]일탈의 즐거움과 창조경제

창조는 모방과 답습을 뛰어넘는 상상과 열정에 의해 새롭고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 최근 창조경제라는 말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창조경제를 할 수 없는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여유와 자유로움에 불안해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과거의 가치와 제도를 답습하고 추종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자식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려 애쓴다. 동시통역사라도 만들 생각인 모양이다. 덕분에 초등학생의 하루 일정이 교수 것보다 더 가혹하다. 학교와 학원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 사는 중고등학생의 삶을 보면 대한민국 모든 대학과 학과를 `명문대학교 잘나가는 학과`로 바꿨으면 좋겠다. 미래가 아닌 대학을 꿈꿔야하는 그들의 창조적 영혼은 언제 어떻게 성장할까? 상상과 열정을 키우는 학원에 보내야하나. 아니면 `명문대학교 잘 나가는 학과`에 가서? 대학은 꿈꾸는 곳이 아니라 꿈을 키우는 곳이다.

그들이 혹시라도 나름의 반란(?)을 꿈꾸려하면 과거로부터 답습된 부모의 `명문`과 `우수`에 의해 진압된다. `명문`과 `우수`라는 두 단어는 싹트는 꿈과 열정을 짓누르고 서로 다르고 새로운 것을 우열관계로 변질시킨다. 급변하는 21세기에 지금의 가치와 인식으로 청소년의 미래를 예측해 줄 수 있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30년 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들이 장년층이 되었을 때 세계적으로 중요한 언어가 영어일까, 중국어일까? 러시아어? 아니면 통일한국의 한국어?

무언가 일을 하려면 여전히 외국을 들먹여야 잘 먹힌다. 별 볼일 없는 국가의 사례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니 외국문물에 대한 애정이 참 많기도 하다. 눈을 부라리며 외국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잘난 사람들조차도 어린 자제분들을 그 나쁜(?) 나라에 유학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운 정도 많은 것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도 하고 배움은 끝이 없다. 하지만 외국문물을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하며 나아가지 않는 한 창조는 없고 모방과 종속만 남는다.

새로운 상상과 열정의 표출이 기존의 제도나 문화와 충돌하지 않은 역사가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머시기, 머시기 진흥에 관한 법`이 70개가 넘는다. 게임산업, 소프트웨어산업, 영상산업, 음악산업, e스포츠산업, 콘텐츠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진흥을 위한 법률이 마련돼 있고 정보통신분야는 최근에 진흥을 넘어 융합 활성화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됐다. 훌륭하다. 새로운 산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부작용은 필연적으로 규제를 요구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심각한 문제는 부작용의 이슈화와 규제강화가 집착증환자의 집착수준이라는 점에 있다. 진흥이 규제로 전환되지 않는 한 병세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발한다. 그렇게 애정을 보이던 외국의 자유로움에 대해서는 치매증세도 보인다.

창조경제는 일탈(?)을 포용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강원랜드가 도박 중독자와 가산을 탕진한 노숙자를 만든다는 말은 맞다. 그렇다면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다. 마카오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약 4만달러, 우리나라의 2배라는 데 그 곳의 주민들은 도박중독에 빠져 노숙자가 되어 있을까. 우리는 용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내기조차도 도박범죄의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수입의 10분의 1을 마음의 안식처인 종교단체에 내는 것과 마음의 놀이터인 게임에 쓰는 것은 무슨 이유로 구별될까. 낭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게이머는 종교단체에 돈을 내는 것이 낭비다. 세금? 게임사가 세금 더 많이 낸다. 경제발전? 게임사가 월급주고 게임개발하고 수출도 잘하면서 경제발전에 더 기여한다. 윤리? 그 돈이 좋은(?) 곳에 쓰이는 곳은 매우 다양하다.

창조는 꿈을 꾸면서 시작되고 꿈은 열정이 있어야 불이 붙는다. 모방과 답습을 벗어나 새로운 상상과 변화의 열정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창조경제는 경제정책만이 아니다. 청소년에게는 삶의 여유를, 경제에는 자유를, 문화에는 변화의 다양성을 포용하여야 하는 사회문화정책이기도 하다.

정해상 단국대 법대교수 hocru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