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무엄하도다”

[데스크라인]“무엄하도다”

사극 속 임금은 조정 대신은 물론 만백성을 “무엄하도다” 한마디로 무릎 꿇린다.

왕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도 왕권을 능가하는 권한이 없던 시절이니, 그럴 법 하다. 하나 뿐인 목을 내놓는 일이니 왕의 잘못이나, 사회의 폐단을 개조하기 힘들었다.

현대 사회로 와선 자본이 이 패권을 꿰찼다.

자본의 힘은 가히 무적에 가깝다. 애써 설득하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본의 힘을 빌면 기업 경영은 물론 일부 국가 통치와 군대 매수까지 가능하다.

사회적 통념 속에 `돈의 힘`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기성 생활인들의 생각 뿐 아니라 이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자각 속에도 자본의 힘은 `무한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10억원이 주어지면 한 1년쯤 감옥살이를 해도 괜찮다는 중·고등학생 수가 열에 대여섯에 이를 정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꽃이 주식시장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지배구조와 경영권, 지분다툼은 자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상장을 회사 성장의 제1 목표로 내걸고 달렸던 기업들이 상장 후 주주들의 지나친 입김과 요구, 간섭에 상장을 자진 철회하고 이른바 `재야`로 내려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각설하고, 경영권이나 CEO 권한은 천하무적 같지만 철저히 주주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분 구조에 의해 제한된다. 따라서 대부분 기업 형태인 주식회사의 진정한 주인은 주주란 사실은,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이 국민(유권자)이란 사실처럼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도 주주의 권리와 요구는 여전히 뒷전에 밀려있다.

모바일 게임업체 게임빌은 컴투스의 최대지분을 전격 사들였다.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업계 평정인 셈이다. 물론 인수 조건에 5주간 협상완료가 들어있긴 했으나 상황이 벌어진지 10일이 지났지만 주주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향에서 합병 또는 개별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더욱이 인수 회사도, 피인수회사(컴투스)도 모두 상장사다. 외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말 그대로 CEO 고유업무 해태에 의한 주주소송감이다.

1년여 전 우리나라에서 성공해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이 한국 상장사 엔씨소프트의 최대지분을 인수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두 회사는 CEO가 공개적으로 인수 이후의 공과와 앞으로의 구체적 계획을 밝힌 일이 없다.

외부로부터 특정 산업에 대한 규제와 법적 장치는 최소화하는 게 맞는 흐름이다. 게임산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게임산업계 영향력이 큰 회사들이 이처럼 공개적이고, 명확하게 주주지향성을 저버릴 때 그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악화와 불합리에 따른 반발은 해당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모델을 가졌다한들, 해외에서 아무리 좋은 사업 성적을 낸다하더라도 주주 1인의 악화된 여론은 국민 열명, 백명의 목소리에 반드시 투영된다. 게임빌이 15일부터 홍콩,싱카포르에서 개최키로 한 해외 기업설명회(IR)도 옹색하게 비치긴 마찬가지다.

게임빌 주가가 연중최저치인 5만3800원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는 원인을 내부에서 먼저 찾아볼 일이다. 아무리 최대주주라 하더라도 주주를 무엄하게 여길 순 없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