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했다. 자신도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계속 잡아먹어버렸다. 오늘날 지식재산(IP)권 보호를 위한 미국정부의 움직임과 닮은 꼴이다. 자신이 낳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집어 삼키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한 이후 세계를 선도한 산업은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IT산업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분쟁없이 영원히 번영할 것 같았던 두 산업의 상생관계에 큰 지각 변동을 불러 올 법안 PIPA (PROTECT IP Act)와 SOPA(Stop Online Piracy Act)가 미 의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 전쟁은 미 의회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 의해 종식될 전망이다. PIPA와 SOPA는 미국 연방정부와 저작권 소유자가 미국 내 상표나 저작권을 침해하는 정보와 자료를 배포하는 웹사이트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두 법안 모두 미국 이외의 지역에 등록된 웹사이트의 도메인에도 적용이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 상원에 2011년에 발의된 법안인 PIPA는 저작권 소유자 혹은 미국 연방정부가 대물소송(in rem action)으로 대상 웹사이트 도메인 이름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복제물 혹은 위조품 등을 만드는 법률위반 행위가 존재하는 웹사이트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등록되어 운영할 지라도 법원의 제재가 가능하다. 2010년 하원에서 발의한 SOPA는 PIPA보다 더 강력한 법적 제재를 포함한다. SOPA는 웹사이트 운영업체 측이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웹사이트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모든 자료와 정보를 감시하고 저작권을 침해하는 자료를 추려내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쯤 되면 누가 이 법안들을 지지하고 반대 하는지 짐작이 간다. 워너브라더스, 비아컴, ESPN 등 컨텐츠 회사는 찬성할 것이고, 웹사이트 운영업체 페이스북, 구글, 위키피디아, 이베이 등은 반대할 것이다. 정당한 저작권을 보호해 주자는 법안이 당연히 `정도(正道)`이지만 대세는 이 법이 통과되지 않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1월 18일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구글 등 7000여개의 웹사이트는 SOPA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지난해 2월 7일에는 모질라, EFF 등 미국 75개 기업 및 단체들이 미 의회에 SOPA와 PIPA를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16시간 동안 이 이슈와 관련하여 총 240만 트윗이 올라왔다.
법이란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공익을 구분 짓는 경계이다. SOPA나 PIPA가 시행된다면, 저작권을 소유한 개인 혹은 기업의 권리는 보호받게 되지만, 그러한 창작물을 지금껏 당연시 하면서 향유한 일반 사회의 권리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한편으로 일반 사회의 공익만을 위해 저작권을 불법으로 사용해도 침해가 되지 않도록 허용한다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물을 창작한 원작자의 권리가 무용지물이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창작자 권리보호에 앞장서지 못하는 사회에서 창작자들은 그저 동물원의 원숭이로 전락해 버리고 사회 문화는 숨쉬지 못할 것이다.
SOPA와 PIPA는 현재 미 의회에서 계류 중이다. 과연 미국정부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같은 존재일까.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책임지지 않는 인터넷 저작권침해와 같은 불법행위가 대중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기 보다 법이라는 보다 엄격한 잣대로 해석되기를 기대한다.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WIPA)
함윤석 미국 로하트만햄앤버너(LHHB) 대표변호사 yham@ipfi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