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외산 장비업체 대공습…국산 장비 씨말린다

외산 일색 통신장비, ICT 성장 적신호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의 각축전이 심화되면서 그동안 국산 장비 영역으로 분류되던 가입자단 장비까지 무차별 공세가 펼쳐지고 있다. 외산 장비업체들은 이른바 `끼워팔기` `무상교육` 등과 같은 변칙 영업까지 서슴지 않아 국산 장비의 씨가 마른다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경기 불황을 타고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외산 장비도 공급가를 크게 낮춘데다 그동안 시장이 분리되어 있던 전송 등 일부 시장에서 국산과 외산 업체가 격돌, 전통적인 시장 영역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슈분석]외산 장비업체 대공습…국산 장비 씨말린다

◇구조조정 돌입 등 이미 생태계 변동 시작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 A사는 올 들어 특정 통신사 사업 비중을 크게 높였다. 해당 통신사가 수주하는 거의 모든 NI 사업에 장비를 공급했다.

관련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당 통신사 실무 임원들의 매출 압박이 심해지며 A사가 임원 매출을 보전해주겠다는 글로벌 업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제안을 하는 등 영업을 강화했다”며 “이동통신 시장에서 입지가 줄어든 A사가 NI 등 기업시장에서 활로를 찾으며 그동안 이 시장에서 먹거리를 찾아왔던 국내 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송 쪽 피해가 막심하다. 그동안 국산 전송업체는 캐리어이더넷 등 차세대 기술에 수십억원 규모 자금을 투입해왔다.

대부분 연매출 1000억원이 안 되는 기업들로 덩치에 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해당 시장에서 A사 등 글로벌 기업과 부딪히며 상처를 입었다. 올해 상반기 사업에서 수주에 연달아 실패한 한 업체는 이미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롱텀에벌루션(LTE) 구축 시장에서 이동통신 업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유럽 NSN과 중국 화웨이는 국내 기지국 관련 장비 공급가를 대폭 낮춘 것으로 지목된다.

통신사-기지국 공급사-국내 중계기 업체 생태계 고리에 도는 자금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중계기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국내 생태계에서 돌던 자금의 규모가 70% 이상 줄었다”며 “기지국 공급업체 단계에서 투자금이 20~30% 이상 줄어들면 중계기, 시공 등 하위 생태계에서는 배 이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생태계 상위에 위치한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일명 글로벌 기업들 중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나머지 국산 통신장비 업체들은 탄탄한 기업의 경우 연 매출 1000억원에서 3000억원 사이 나머지 업체는 연 수백억원 규모 매출을 올리는 사업자들로 사업에서 연달아 수주에 실패할 경우 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장비 업체 체질이 워낙 취약한데다 글로벌 업체가 시장을 침범하고 저가 공세로 하위 생태계 물을 흐리는 등 이중고가 심하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제도나 서비스 사업자들이 국내 산업에 대해 책임감 있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Z까지 모든 솔루션 공급...패키지 영업 현실화되나

더욱 무서운 것은 글로벌 업체의 공세가 아직 시작 단계라는 점이다. 이미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도 생존게임이 시작됐다. 기업 인수합병(M&A) 등 사냥이 시작되면 글로벌 업체 영업력은 더욱 무자비해질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패키지` 솔루션 공급은 경계 1호다. 무선 공급을 조건으로 유선 시장까지 저가로 진입하거나 장비 리스 등 경제성을 내세워 라우터, 교환, 전송, 관제 등 통신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공급하려는 글로벌 업체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산 무선통신장비 업체 한 CEO는 “이미 국내 통신사도 긴축 재정 등 인프라 구축에서 경제성을 가장 우선시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이 경우 통합 솔루션을 강조하는 글로벌 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깊숙이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는 개발 도상국에서 패키지, 리스 영업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중국업체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동남아 등에 영향력을 넓히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ICT 관련 서비스, 후방 산업이 고도화된 편이라 아직 영향권에 들지 않았지만 통신사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KT도 CAPEX, OPEX 절감을 이유로 지난해 유사한 방법을 검토한 바 있다.

통신장비 업체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내수도 담보 못하는 기업이 수출 등에서 여유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 늦기 전에 글로벌 업체들의 무분별한 공세를 막고 강제로라도 상생전략을 짜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