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는 현 정부가 정작 ICT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이 생겼다.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예산이 절반이나 뚝 잘려 나갔다. 이 회의는 4년마다 열려 ICT올림픽이라 불릴 정도로 초대형 행사다. 세계 ICT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모인 행사가 돈이 없어 초라하게 치러질 판이다.
ICT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국회 논의과정에서 삭감됐다면 분노가 그나마 덜할 것이다. 정부 논의 과정에서 이렇게 결정됐으니 행사의 의미와 파급효과를 정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세수 부족 대책으로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였다. 특히 행사 예산을 집중적으로 줄였다. 다른 행사도 삭감했는데 ITU전권회의 예산만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가급적이면 행사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야 이해한다. 그럴지라도 행사마다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반토막 예산을 보면 정부가 ITU전권회의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ITU가 전권회의를 한국에서 열기로 결정한 것은 ICT강국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진 결과다. 벤치마킹하는 나라를 찾아온 이들에게 홍보는커녕 이미지만 떨어뜨릴 지경이 됐다.
전권회의는 단순히 우리나라 ICT 위상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우리 ICT 기업이 해외 정책결정권자와 기업에게 기술을 알릴 기회다. 부산은 지역 경기 진작과 아울러 영화제로 알려진 부산을 국제도시로 부각시킬 행사다. 더욱이 내년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ITU고위직 진출을 추진한다. 우리 ICT 산업의 약점인 외교력을 키울 기회다. 이런 유형무형의 경제파급효과가 막대한 것을 경제부처가 간과했다.
정부가 먼저 예산을 줄인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내년 예산 심의와 과정에서 이 예산만큼 증액시켜야 한다. 정치인이 ICT와 같은 미래 산업에 대한 인식도 관심도 미진하다는 비판도 단번에 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