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유승희 의원(민주당)이 KT의 무궁화위성 해외 헐값 매각을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위성이 당국에 신고 없이 수출됐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KT의 과실 여부를 떠나 대기업조차 전략물자 제도를 따르지 않고 있고, 위성이라는 주요 설비 매각 과정이 관리 당국에 전혀 모니터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차제에 전략물자 관리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복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략물자는 대량살상무기(핵·생화학), 운반수단인 미사일, 재래식 무기와 이들 무기 제조·개발에 이용 가능한 물자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무기 자체만 전략물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산업용 물자도 무기 생산에 쓰일 수 있으면 모두 전략물자에 포함된다. 청화소다, 밸브에서 공장 기계, 반도체 제조장비, 네트워크 장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전략물자 개발·생산·사용에 필요한 전략기술을 포함해 수출입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공급그룹(NSG, 핵무기)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생화학무기) △미사일기술수출통제체제(MTCR, 미사일) △바세나르체제(WA, 재래식 무기) 등 4대 국제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 규정을 따르고 있다.
국내법상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외무역법과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에 의해 전략물자 관리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실제 무기는 방위사업법에 따라 방위사업청이 관리한다.
모든 기업은 전략물자로 예상되는 물품을 수출할 때 사전에 해당 여부를 판정받고, 전략물자에 해당되면 사전에 허가받아야 수출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수출입 제한(행정처분)은 물론이고 징역·벌금형(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전략물자 관리 제도에 대한 우리 기업의 인지도와 이해도가 낮다는 것이다. KT 사례처럼 업무상 착오였든 고의적인 회피였든 대기업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전략물자 자체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인지도는 86.4%로 높지만 관리제도 내용을 이해하는 정인지도는 28.4%로 매우 낮다.
전략물자 수출 시 사전에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아는 기업은 67%, 전략물자 관련 기술을 해외로 이전할 경우 허가받아야 하는 것을 인지한 곳도 60.2%에 머물렀다. 기업 스스로 전략물자 확인 절차를 밟아야하는 점을 알고 있는 기업은 48.5%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정부의 사전 대응체계도 미흡하다.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품목이 워낙 광범위해 위성 매각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모니터링이 쉽지 않다.
전략물자와 연관된 수출품목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방법이지만 이는 수출 기업의 불편을 가중시키는 규제 강화에 해당돼 추진하기 어렵다. HS코드(품목분류번호) 기준으로 전략물자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약 30%에 달한다. 통관 과정에서 이를 모두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기업 간 국제 공동 개발이나 글로벌 산학협력 형태로 전략기술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전략물자 관리 부담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전략물자 불법 수출로 인한 행정처분은 매년 증가했다. 2009년 5건에서 지난해 28건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기업의 전략물자 사전 신청 건 수가 지난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시행한 전략물자 불법수출 자진신고와 중소기업 홈닥터 컨설팅 사업이 효과를 보면서 자발적인 신고가 늘었다. 기업의 사전 신청 건수는 지난해 7708건으로 전년 대비 87% 급증했다.
정부는 전략물자 관리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 홍보로 기업의 자율 준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수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략물자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 모니터링 강화는 자칫 기업에게 또 다른 `손톱 밑 가시`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보기술(IT) 시스템을 활용한 보다 정밀한 사전 검증 체계가 요구된다.
지난달 `2013 무역안보의 날` 행사 참석차 방한한 테렌스 테일러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전문가그룹 간사도 “대량 파괴무기 확산 저지를 위한 유일한 방안은 기업의 자율적인 수출 관리와 기업·정부간 협업 강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자율적인 수출관리를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엔 허가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한편 이메일을 통한 전략기술의 무형 이전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할 방침이다.
교육 차원에서는 전략물자 수출업체 3만여개사를 우선 순위별로 분류해 타깃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에 현장방문 컨설팅을 제공하는 홈닥터 사업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주소령 산업부 무역안보팀장은 “홈닥터 사업과 맞춤형 교육 등을 강화해 전략물자 관리제도의 실효성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