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 회장, 반도체보다 그룹 회생 택했다

4대 주력 사업 조정 불가피

동부그룹이 애지중지해온 반도체 사업까지 매각한 것은 그룹 회생을 위한 김준기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동부그룹은 이를 통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졸업하고, 전자·금융·철강·농업/바이오 4대 주력 사업의 큰 틀은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핵심 계열사가 매각되면서 4대 주력 사업의 내실도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는 갑작스러운 동부하이텍 매각 발표 소식에 의외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김준기 회장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의지가 그 만큼 각별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면서 그룹 유동성 우려가 제기됐을 때 사재를 출연하면서까지 밀어붙인 바 있다. 지난 10여년간 적자가 지속됐지만, 단 한 번도 반도체 사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채권단 및 금융권의 압박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치킨게임을 거치면서 승자독식 구조가 벌어지고 있다. D램 시장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도시바·SK하이닉스 세 회사만 정상적인 사업을 하고 있을 정도다.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시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부분의 휴대기기가 스마트폰에 통합되면서, 일부 선두 업체만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동부하이텍이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금융권은 동부하이텍의 이런 상황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동부그룹의 재무구조로는 무리라는 채권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부그룹이 전자·금융·철강·농업/바이오 4대 주력 사업의 큰 틀은 유지하지만, 세부적인 사업 내용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유동성 위기설의 진원지인 철강 사업은 특히 변화가 클 것으로 보인다. 동부메탈의 매각과 함께 종전 주력 사업인 합금철 부문을 정리하는 대신 전기로제철 사업을 키울 계획이다. 전기로제철은 25년 역사 밖에 안 된 첨단 분야로 철광석과 석탄 같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 부문은 기존 주력 계열사였던 동부하이텍 매각으로 올해 인수한 동부대우전자(옛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역할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 성격도 기업간거래(B2B)에서 소비자거래(B2C)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동부그룹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동부하이텍을 중심으로 부품부터 세트(완제품)까지 아우르는 종합전자기업을 목표로 했다. 이번 구조조정으로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1984년 냉연강판 전문회사인 동진제강(현 인천공장)을 인수한 동부그룹은 2001년 아산만공장을 건설했다. 2009년 전기로 제철공장을 완공하는 등 철강사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부지만 10만평에 달하고, 수익성이 좋은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주력 사업장으로 가치가 높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