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180조 `포인트` 전쟁...국경없는 글로벌 전쟁터로

포인트, 국경 없는 경쟁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항상 따라 붙는 `항목`이 있다. 바로 포인트다. 국내 포인트 카드는 이미 2억장을 돌파했다. 대기업과 유통사, 신용카드, 이동통신사 등 다른 사업자가 신규 고객 유입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플랫폼으로 `포인트`를 꼽는다. 포인트는 소비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슈 분석]180조 `포인트` 전쟁...국경없는 글로벌 전쟁터로

포인트 전문기업 에이미아(AIMIA)에 따르면, 세계 마케팅 비용은 900조원에 달한다. 이 중 160조원이 포인트 지출 비용이다. 특히 G20국의 포인트 마케팅 비용은 평균 185조원을 넘어섰고, 이는 홍콩과 이란, 포르투갈 GDP와 맞먹는 수치다.

우리나라의 포인트 시장은 연간 약 4조원 규모다. 이 중 OK캐시백, 해피 포인트, CJ 원카드, 롯데 멤버스 등이 대표 대기업군 포인트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데 이들 각자 포인트 규모는 3000억원에 달한다. 포인트 프로그램은 과거 고객에게 일방향으로 주어지는 부가서비스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우량 고객의 로열티를 증대시키는 강력한 마케팅 플랫폼으로 급부상했다.

하나의 포인트 마켓이 형성된 셈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결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e커머스와 연계한 전자지갑이 포인트를 품에 안는 구도로 확장되고 있다.

포인트 프로그램의 원조는 항공 마일리지에서 시작됐다. 1984년 대한항공이 국내 최초로 스카이패스를 출시했고, 1989년에 아시아나가 마일리지 프로그램인 보너스 클럽을 선보였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포인트가 등장하면서 일대 변혁기를 맞이했다. 1999년 SK 주유소에서 발급하는 엔크린보너스카드와 SK텔레콤의 011 리더스카드가 주인공이다. 2000년 들어 카드사와 통신사 위주로 포인트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국내 포인트 시장의 골격을 형성했다.

이후 강력한 포인트 발급 주체가 등장하는데 바로 대기업군이다. 롯데와 GS, CJ 등이 연이어 높은 적립률을 바탕으로 자체 고객 대상의 포인트 프로그램을 출시한다.

◇개방형 vs 폐쇄형

결국 국내 포인트 시장은 카드사와 통신사 중심의 개방형 포인트와 대기업 중심의 폐쇄형 포인트로 양분된다. AT커니에 따르면 국내 카드·통신사 포인트 규모는 약 1조500억원, 대기업군이 속한 유통사 포인트 1조6000억원, 항공 마일리지는 1조1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세계는 왜 포인트 프로그램에 집착할까? `블러드(Blood) 기능` 때문이다. 포인트는 엄밀히 말하면 소비가 아니다. 일종의 보상체계지만 포인트가 또 하나의 소비를 유발하는 `블러드` 기능을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즉, 일반 소비와 보상체계 접점에서 이를 순환시켜주는 피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현금과 동일한 매개체로 사용되면서 우량 고객의 로열티를 증대시키는 플랫폼으로 정착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지출에 대한 최대한의 적립을 받아 이를 합산 사용한다. 차감 할인과 상품권 교환, 다양한 소진처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현명한 소비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기업과 가맹점은 과도하지 않은 비용 부담 내에서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고객에게 로열티를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고객 로열티 증대를 위한 필수조건이 된 것이다.

이제 소비자 또한 포인트를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인지하면서 `포인트 마니아` `포인트 정보교류` 커뮤니티까지 양산되고 있다. 특히 신용카드 발급에 있어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높은 포인트 적립률`이었다.

◇포인트 사용률 96% 넘어

포인트 사용률도 신용카드가 평균 94.4%, 대기업군의 포인트는 96%를 넘어섰다. 신용카드 사용자 중 20%가 만족도의 첫째 요소로 적립률을 꼽았다. 우리나라 1인당 평균 8장의 포인트 카드를 보유하고 이미 2억장 수준의 포인트 카드가 보급됐다는 점도 이제 포인트 프로그램이 소비 패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도 항공 마일리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플레이어가 등장해 `포인트 전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수 급증으로 기업과 고객 관점에서 다양한 이슈를 제기한다. 포인트 프로그램 차별화가 어려워지면서 고객 지갑 속에서 선택받기 위한 포인트 전쟁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 기존 포인트 프로그램 제휴처에 만족하지 않고, 이른바 독립적인 포인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로 폐쇄형과 개방형 포인트가 그것이다.

인당 보유 포인트 급증은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숙제를 제공한다. 포인트 프로그램은 많지만 적립과 소진률이 상이하고 다수 포인트가 내용이 중복되면서 소비자는 피곤하고 골치가 아프다. 포인트 종류가 너무 많아서 적립할 때와 혜택을 받을 때마다 일일이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 것이다.

이런 고민은 국내 포인트 프로그램을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양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통신사와 카드사가 개방형 포인트 프로그램을 밀고 있다면 최근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대기업군의 폐쇄형 포인트 프로그램이 맞불을 놓고 있다. 개방형 프로그램은 포인트를 다양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해외서도 개방형 포인트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진다. 1995년 테스코 클럽카드는 테스코를 영국 1위의 유통소매 업체로 부상시키기 위해 발급된 포인트다. 회원 수만 1500만명, 쇼핑과 주유, 금융, 외식, 통신 등 다양한 캡티브 제휴사를 끌어들여 고객 지출금액의 28%를 상승시키는 의미 있는 성장을 거뒀다. 결국 테스코는 오픈형 포인트 프로그램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

테스코와 더불어 영국 대형 슈퍼마켓으로 급부상한 넥타(Nectar)의 로열티 카드도 오픈형 포인트의 모범 사례다. 테스코에 뒤이어 넥타는 우수고객 대상으로 로열티 카드를 발급했다. 회원 수 1600만명에 쇼핑과 주유, 금융, 외식 가맹점을 붙여 매년 매출 3% 이상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의 개방형 포인트는 1999년 등장한 OK캐시백이다. SK주유소에서만 국한된 포인트 제도를 고객 선호업종으로 확대하고 SK그룹의 핵심인 SK에너지, SK텔레콤 외에도 이마트, 버거킹 외 10개 외식 사업을 붙여 국내 최대 포인트로 이름을 알렸다. 결국 개방형 포인트는 고객 선호 업종에서 캡티브 마켓을 쥐고 있는 제휴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의 경우, 개방형 플랫폼을 위협하는 `폐쇄형` 포인트 프로그램이 급성장하고 있다. 롯데와 GS, CJ, SPC, 신세계 등이 자체 계열사를 끌어들여 계열사 간 사용이 가능한 `그룹 포인트` 사업을 강화하고 나선 것. 이들 대기업군은 유통을 비롯해 다양한 커머스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제휴처를 끌어들이지 않고, 고객에게 높은 적립혜택을 바탕으로 소비처를 단순화시킨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롯데의 경우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라는 유통점, 식음료는 롯데리아, TGIF, 문화는 롯데시네마, 여행은 롯데호텔 등을 묶어 포인트를 사용하게 한다. 그럴 경우 고객은 포인트 카드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 5%에 육박하는 적립률도 기존 개방형 포인트와 차별된다. 높은 적립률로 할인 폭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기프트카드와 포인트 간 상호 전환을 선보이는 등 개방형 포인트와 철저히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CJ원카드 포인트는 웹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포인트로 등록하는 절차를 의무화했다, 자연스럽게 고객 정보를 획득하고, 등록을 통해 기프트카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CJ상품권의 포인트 전환도 허용했다. 소액결제 시에도 현금과 유사하게 쓸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신세계도 자체 통합 포인트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개방형과 폐쇄형 플랫폼 경쟁이 촉발되면서, 포인트 격전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여전히 경쟁은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이 개방형 포인트 사업에 좀 더 비중을 실으면서 신용카드사와 통신사 플랫폼이 힘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기업군의 폐쇄형 포인트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의견도 우세하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베트남, 홍콩,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도 포인트 시장이 개화하고 있다. 최근 포인트 전문 기업인 에이미아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포인트 연동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기업은 포인트 대행은 물론이고 자체 가맹점을 통해 포인트를 국경에 관계없이 연동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포인트도 국경 없는 글로벌 격전장으로 곧 진입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