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시대 융합연구를 가로막는 `칸막이`인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 등 이분화된 출연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일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출연연 사이 칸막이를 없애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조건 없는 두 연구회 통합을 결정한 것은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7월 출연연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서 시작됐다. 전자신문은 출연연 융합연구 강화를 위한 숨은 공로자인 민 의원을 만나 향후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연구 방향과 출연연 역할에 대해 들었다.
![[민병주 의원 인터뷰]"선도형 연구 위해 통합 연구회 위상 달라져야"](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11/22/501385_20131122165542_866_0001.jpg)
창조경제에 맞춰 연구개발(R&D)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성장동력을 잃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추격형(Fast Follower)` 전략은 한계를 맞았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선도형(First Mover)`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R&D 현장에서 조성해야 할 선도형 전략은 무엇일까.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해답을 찾았다.
민 의원은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R&D는 출연연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연구소가 있지만 산업 특성상 이익 창출이 우선인 기술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상품화할 수 있는 R&D만 강조하면 새로운 길을 열 수 없다는 것이 민 의원 생각이다. 그는 “기업연구소 R&D는 이윤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 여부 등 위험성이 크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R&D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라며 “선도형 국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출연연 중심으로 장기 연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인프라를 깔아주고 다음 단계 R&D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출연연 역할이라는 의미다.
출연연 R&D 기능은 기초·공공·산업 연구 세 분류로 나뉘어 있었다. 이명박정부에 들어 공공연구 기능이 줄어들고 기초와 산업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출연연은 각 기능에 따라 나뉘어 두 연구회에 소속됐다. 이분된 출연연 구조는 `칸막이`를 만들었다. 기초연구회 소속 출연연은 연구논문으로 성과가 평가되고, 산업연구회 소속 출연연은 너무 상업화만 강조했다는 것이 민 의원이 지목한 과거 출연연 구조의 한계다. 민 의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사업화까지 가려면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 단계까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 너무 각각 영역에서만 R&D 활동을 하다 보니 연구에 제약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국무총리실은 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과기 분야 정부출연연법 개정안에 대해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조건 없이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월 민 의원 주도로 발의한 법안 통과를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두 연구회가 통합되면 25개 출연연이 하나의 컨트롤타워에 소속되는 셈이다.
통합된 연구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상과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민 의원은 주문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기초연구회와 산업연구회가 출연연 관리 기능 외에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출연연에서 예산을 신청할 때도 과학기술 R&D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과거 교육과학기술부)와 기획재정부, 연구회 등과 협의해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민 의원은 “통합 연구회는 관리 기능보다는 기획·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출연연이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긴 안목으로 가이드라인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마다 개성이 있다. 기초면 기초, 응용이면 응용 연구에 강한 출연연이 나뉜다는 의미다. 출연연 역할마다 집중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차이도 존재한다. 각 출연연 개성을 인정해주면서 융합연구 시너지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도 민 의원이 제시한 통합 연구회 기능이다.
그는 “출연연이 특화된 영역에 머무르지 말고 한 출연연이 해결하지 못하는 R&D를 개방형 융합연구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국가가 나아가야 할 과학기술 방향과 융합 R&D의 길을 밝혀주는 것이 연구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기술 분야별, 전문 영역별 출연연이 함께 나서는 것이 민 의원이 뽑은 융합형 출연연 역할의 대표 사례다.
민 의원은 “중소기업을 돕더라도 단순히 어떤 출연연에서 몇 명을 파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구회에서 지원 방식과 방향을 기획하고 수요를 조사·분석해 현실적이고 총체적인 지원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회를 통합하는 것만으로는 출연연을 혁신할 수 없다. 출연연은 안정적 R&D 환경 보장이 시급한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출연연 역할을 새롭게 기대하는 만큼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민 의원 주장이다. 지난 2월 그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는 예외 기관에 출연연과 연구회를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출연연은 현행법상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인력 운용·예산 집행·경영 평가 등에서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민 의원은 “안정적인 연구 환경은 출연연에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면서 “자율과 함께 책임성을 강조하면 연구 성과도 극대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출연연의 기타 공공기관 제외 문제는 일부 의견차로 아직까지 발 빠른 움직임은 없다. 야당 측에서도 공감하는 의원이 많지만 기재부 협의와 국회 입법 절차가 남아 있다.
민 의원은 “국회가 입법기관이고 법 개정 주축이 된다고 하지만 의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며 “출연연 현장과 과학기술계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은 적극 의견을 개진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