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전야의 긴장감. 1999년 10월 23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분위기가 그랬다. 퀄컴과 CDMA 기술료 배분 소송은 한마디로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경기나 다름없었다. ETRI는 4개월여 준비 끝에 이날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선종 ETRI 원장(현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고문)의 회고.
“소송을 앞두고 퀄컴과의 모든 계약 내용을 다 점검했어요. ICC에 제소한 것은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ETRI가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소송팀 15명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소송전략회의도 했어요. 소장은 미국 로펌에서 작성했습니다.”
며칠 뒤 10월 27일 ETRI는 ICC로부터 중재절차를 시작한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11월 3일 오후 2시 30분 ETRI 회의실.
ETRI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CDMA 기술료 배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김형오 의원(국회 과기정위원장·한나라당 원내대표·대통령인수위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이 1997년 국감에서 퀄컴과의 CDMA 기술료 배분문제를 처음 제기한 후 기술료 문제는 의원들의 단골 질의 메뉴가 됐다.
△김성곤 의원=퀄컴과 공동 기술개발 계약 당시 변호사 자문을 구해 계약한 것 아닙니까. 왜 서로 해석이 다릅니까.
△정선종 원장=당시 조금 미흡한 자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는 CDMA 개발이 성공한다고 확신하거나 지금처럼 시장 규모가 커질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김영환 의원=퀄컴과 계약서는 세 가지입니다. 1차와 2차, 그리고 국내 기업들과 계약입니다. 이 계약서를 보면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도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기술 종속 문서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계약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관련 자료를 제출해 주세요.
△정선종 원장=5일까지 서면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김영환 의원=퀄컴과 계약 시 박헌서씨(현 한국정보통신 회장)는 무슨 역할을 했습니까. 그가 왜 계약서에 서명했습니까.
△정선종 원장=박헌서씨가 퀄컴이 CDMA 상용화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 정보를 알려준 참관인 자격으로 서명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형오 의원=ETRI는 퀄컴에서 받아야 할 기술료를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퀄컴에 지불한 돈은 초기 공동연구 개발비 1695만달러, 계약 시 일시불로 지급하는 선급기술료 7097만달러, 올 상반기까지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 2억1099만달러 등 모두 2억8996만달러에 달합니다. 지난해 기술료 지불액과 올 상반기 지불한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2367억원입니다. 퀄컴과 ETRI의 분쟁 핵심은 기술료 배분 범위에 PCS 포함 여부와 지급 시기, 기술료 검증 방법입니다. 퀄컴 소송을 담당한 법률회사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습니까.
△정선종 원장=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해 12월 2일. 호주의 퇴임 원로판사인 홀프만 변호사가 중재재판장에 임명됐다. 미국과 호주 국적의 변호사 두 명은 중재위원으로 선임됐다.
소송 준비가 한창이던 1999년 7월 어느 날 정선종 원장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퀄컴 부사장 직함의 스티브 알트만 변호사였다. 그는 퀄컴과 기술개발 계약서 작성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정 원장은 서울 하얏트호텔 일식당에서 알트만과 만났다.
△알트만=회장께서 연체된 기술료 5000만달러를 현금으로 즉시 지불하겠으니 소송을 취하하고 화해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정선종 원장의 회고.
“40대 초반의 알트만이 제이콥스 회장 지시라며 그런 제안을 했어요. 당시 한화로 600억원이란 큰돈인데 돈 못지않게 한국과 ETRI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습니다. 재판이 퀄컴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느끼자 협상을 하자는 것입니다. 제이콥스 회장이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알트만=석고대죄가 무슨 말입니까.(정 원장이 10분간 영어로 석고대죄를 설명)
알트만의 안색이 붉게 변하더니 “왜 퀄컴 회장이 석고대죄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정선종 원장=작은 벤처기업인 퀄컴이 한국 덕분에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올라앉았으면서 ETRI에 지급해야 할 기술료도 주지 않은 건 한국 국민에게 죄를 지은 것 아닙니까.
정 원장은 퀄컴의 협상 제안을 칼로 무 자르듯 거절했다.
그해 10월 18일 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김형오 의원은 퀄컴의 CDMA 기술배분료 문제를 집중 질의했다.
△김형오 의원=우리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실속이 없는 허울 좋은 말입니다. 고생은 우리가 했는데 돈을 미국 퀄컴이 챙기고 있습니다. 계약서를 잘못 작성해 매년 막대한 경상기술료를 퀄컴에 주면서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TRI가 퀄컴을 ICC에 제소했지만 아직까지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습니까. 정통부와 ETRI는 이 문제 해결의지가 있습니까. 아니면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까.
김형오 의원의 증언.
“당시 ETRI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국익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해 12월 14일 샌디에이고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퀄컴의 홈그라운드였다.
ETRI는 정통부 공무원, CDMA 개발 연구진, 기업체 직원 등 18명을 국내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들은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중재위에 참석했다.
이혁재 소장(현 KAIST 명예교수)의 증언.
“하루 중재위 참석을 위해 일주일씩 변호사들과 예상 질의답변을 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중재위에 참석하면 통역을 거쳐 대답하라고 로펌에서 주문하더군요. 통역하는 동안 답변 내용을 생각하라는 거였습니다. 퀄컴 측이 반론을 제기했지만 ICC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ICC에서 양측에 제3의 전문가를 한 명씩 추천토록 했다. ETRI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데이비드 콕스 박사를 선임했다. 그는 완벽한 준비로 ETRI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기철 부장(현 책임연구원)의 기억.
“증인들은 중재위 사무실 밖에서 대기하다 부르면 들어갔어요. 중재위원들이 `PCS를 셀룰러와 다른 장비로 생각했느냐`고 묻기에 `아니다. 같다`고 대답했어요. 양측이 서로 주장하고 반론하고 그랬습니다.”
양측이 ICC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던 2000년 9월 제네바에서 세계전파통신회의(WRC)가 열렸다. 정 원장도 참석했다. 제이콥스 퀄컴 회장이 제네바 호텔에서 조찬을 하자고 요청했다. 정 원장은 피할 이유가 없었다.
제이콥스 회장은 정 원장에게 “재판을 중단하면 기술료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앞으로 ETRI와 공동연구도 진행하겠다”고 제안했다. ETRI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자 퀄컴이 두 번째 화해 손짓을 한 것이다.
정 원장의 말.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라서 `내 마음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거절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잘 지내자`며 헤어졌어요.”
그해 12월 8일 판결이 나왔다. ETRI의 완벽한 승리였다. 분쟁 소송금액도 1999년까지 배분액과 연체이자를 포함해 1억1700만달러를 요구했는데 소송과정에서 금액이 늘어났다. 국내 사상 최고의 국제 승소금액으로 지식재산권 분야의 기념비적 쾌거였다. ICC는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퀄컴은 ETRI와 JDA 사항을 철저히 준수하라는 단서까지 달았다.
이혁재 소장의 말.
“ICC는 단심(單審)입니다. 퀄컴이 판결에 이의가 있으면 미국 법원에 정식 재판을 요구할 수 있는데 퀄컴은 이를 포기했어요. 자기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죠. 정 원장의 뚝심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승소할 수 없었을 겁니다.”
2001년 3월 16일.
ETRI는 퀄컴으로부터 기술분배금 1억25만5530달러(당시 한화 1289억원)를 받았다고 밝혔다. 정선종 원장은 이날 “이번 승소는 CDMA 기술의 세계화와 더불어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중요한 사례가 됐다”며 “이 일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김형오 의원”이라고 말했다.
기술료 전쟁에서 이긴 정 원장은 그해 3월 30일 ETRI 원장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오길록 ETRI 연구위원이 선임됐다.
ETRI는 그해 4월 11일 CDMA 기술료를 돌려받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형오 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 의원은 CDMA 개발 연구진을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으로 초대해 저녁을 샀다.
박항구 단장(소암시스텔 회장)의 말.
“국회의원에게 저녁을 처음 얻어먹었어요. 그동안 수고했다며 격려하셨어요. 당시 기술개발 연구진 6~7명이 초대를 받았어요.”
김형오 의원의 회고.
“당시 언론에서 `돈 벌어온 국회의원`이라고 하더군요. 보람이 컸어요.”
ETRI의 퀄컴 승소는 지식재산권 분야의 일대 전환을 알리는 신문고였다. 모든 계약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가정이긴 하지만 당시 퀄컴과 대등한 계약을 했다면 ETRI는 많은 기술료를 받았을 것이다.
그해 9월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퀄컴 기술료 불공정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국회 퀄컴대책반` 구성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 일도 김형오 의원이 주도했다. 대책반은 그해 12월 9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의회와 행정부, 퀄컴을 방문, CDMA 계약의 부당성을 제기했다. 정통부는 그해 8월 3일 퀄컴에서 받은 기술료 전액을 원천, 기초 기반 기술 개발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퀄컴과 체결한 불평등·불공정한 계약 내용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