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메모리사업부 내에 `솔루션개발실`을 신설했다. 내장형멀티미디어카드(eMMC)나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적층한 실리콘관통전극(TSV) 패키지 개발을 염두에 둔 조치다. 미세화 설계 기술과 양산 기술력만 있으면 메모리를 제조해 범용으로 판매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세트 제품과 완벽하게 연동된 반도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핵심은 소프트웨어(SW)다.
메모리에 비해 SW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게 시스템 반도체(시스템온칩, SoC)다. 반도체를 실제 완제품에 적용하려면 미들웨어, 운용체계(OS) 등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구동돼야 하기 때문이다. SW와 SoC의 연동이 절실한 시대가 됐다.
◇소프트웨어온칩(SoC)이란
이미 몇 년 전부터 SoC 팹리스 업체들의 연구개발(R&D) 인력 중 SW 비중이 HW를 넘어섰다. 메모리는 최근에야 솔루션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를 보면 솔루션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3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화웨이는 지난해 대비 판매량이 76% 증가했다. 레노버는 77.6%나 늘었다.
중국 업체들이 이렇게 약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로 대만 미디어텍의 활약을 꼽는 사람이 많다.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모뎀(베이스밴드)을 판매하면서 `솔루션` 개념을 도입했던 사례이기 때문이다. AP·베이스밴드 통합칩과 주변 기능을 포함한 레퍼런스 보드를 만들어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함께 제공한 미디어텍 덕분에 중국 스마트폰 산업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다.
SoC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AP는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솔루션뿐만 아니라 회로 설계에서도 SW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입출력메모리관리유닛(IOMMU)은 일종의 가상 메모리를 설정해 AP의 부하를 줄여주는 기술이다. 멀티코어로 코어 수를 늘리는 대신 가상화된 메모리에 데이터를 넣고 빼면서 성능은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역시 SW로 가능한 기술이다. OS 등 플랫폼과 연동하기 위해서도 SW 기술이 중요하다. 서상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상무는 “OS 변화 트렌드에 맞는 하드웨어 기술을 개발해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현규 ETRI SW-SoC융합본부장은 “SoC는 세트 제품의 시스템 요구 사항과 운영 방식을 반도체 칩에 심어 놓은 것”이라며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SW 비중이 늘어나 SoC를 `소프트웨어 온칩`으로 불러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형 SW-SoC 융합 방안
SW와 SoC 융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8개월간 가장 활발하게 인수합병(M&A)이 이뤄진 분야가 SoC, SW산업계다. 융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세계적으로 약 60건의 SoC·SW 업체간 M&A가 있었다.
코어프로세서 업체 ARM이 지난 8월 센시노드를 인수한 게 한 예다. 사물인터넷(IoT)에 필요한 연동 SW 기술을 가진 회사다. 칩 하나로 다양한 OS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은옥 ETRI SW-SoC R&BD센터 팀장은 “예전에는 반도체 업체가 임베디드 SW 개발비를 제외하고 단가를 책정했지만 최근에는 칩 가격에 SW 가격이 반영되고 있다”며 “SW 기술의 중요성을 시스템·완제품·칩 업체 모두 인식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는 SoC와 SW 생태계부터 취약하다. 임베디드 SW 회사가 500개에 달하지만 SoC를 개발하는 팹리스와 소통 창구가 거의 없다. 선진국 대비 임베디드 SW 기술 수준도 떨어진다. 임베디드SW산업협의회가 지난 2011년 조사한 내용을 보면 OS 관련 SW 기술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SW 회사와 팹리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라 개별 회사가 각각 필요한 부분을 투자하거나 M&A를 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SW-SoC 융합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도 고민거리다. 이장규 텔레칩스 부사장은 “신규 칩을 개발하면서 융합을 고민하는 것보다 이미 팔리고 있는 SoC 제품에 SW를 적용해 응용 분야를 다양화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고 봤다.
◇인력 양성 현황은
삼성전자가 인문계 전공자를 SW 엔지니어로 육성하기 위해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교육 과정을 올해 신설했다. 표면적으로는 `통섭형` 인재를 길러낸다는 기치를 걸었지만 사실상 국내에 SW 엔지니어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SoC 산업 종사자는 지난해 말 기준 2만1275명에 불과하다. 대만의 39% 수준이고, 대기업 수요가 많아 중소기업 인력은 그 중에서도 19%에 불과하다. 임베디드 SW 종사자는 (일반 전산직 포함) 전체 SW 산업 종사자 77만명 중 16.9% 가량이다. 이공계 대학 진학률이 감소하면서 SW·SoC 전공자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국내 주요 5개 대학 SW 전공자 수는 지난 2011년 기준 2년전에 비해 24.7% 줄었다. SoC 전공자도 (석·박사 기준) 같은 기간 37.7% 격감했다. 지난해 SoC를 전공한 박사는 채 400명이 배출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SW와 SoC를 모두 이해하는 SW·SoC 아키텍트(Architect) 전문 인력은 대학에서 거의 양성되지 않고 있다.
ETRI가 지난 2010년부터 그나마 융복합 SoC 인력 양성 사업을 통해 졸업생 253명을 낸 게 전부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