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핵심 산업으로 소프트웨어(SW)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크고, 컴퓨터와 프로그래머 인력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는데다 적용된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랜 시간을 들여 SW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연구개발(R&D) 강화, 인력 양성, 시장 환경 조성 등 각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양질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정말 이대로 하면 SW 산업이 육성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우리나라 SW 산업이 낙후된 것이 사실 인력이 모자라거나 창업과 신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SW의 일부인 게임 산업에는 우수 인재와 자본이 줄을 선다. 넥슨 같은 성공 신화가 다른 SW 분야에서도 줄줄이 나오면, 인력 공급과 창업은 정부가 말려도 줄을 잇게 돼 있다.
우수 인재가 SW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돈을 못 벌면 직업을 바꿀 것이고, 우수 창업이 이어져도 수익이 안 나면 레드 오션에 좀비 기업이 늘어날 뿐이다. 결국 인력 양성이나 창업 활성화와 같은 공급 활성화 정책은 SW 기업이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하는 수요 활성화 정책보다 앞설 수가 없다.
SW혁신전략에 나와 있듯, 해외 진출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 확대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든 해외 진출과 지속적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해외 진출을 끈기 있게 추진하고 R&D 투자를 지속할 만큼 초기 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SW 기업은 금방 경쟁력을 잃고 좀비 기업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SW 산업 육성의 최우선 목표는 기업이 어떻게 초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SW 기업들이 자본을 축적하도록, 즉 돈을 벌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벤처 자본에 의한 투자 활성화도 좋은 해법이지만,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 이보다는 시장에서 많이 팔아서 돈을 버는 편이 좋다.
문제는 기업용 SW가 전체 SW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이 국산 제품을 많이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국산 SW에 대한 역차별은 심각한 상황이어서 `외산 업체가 1등 할 때까지` 성능 테스트를 끝없이 반복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년간 성공한 기업용 SW 업체는 한글과컴퓨터, 안랩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여기서 정부가 해줘야 할 일이 나타난다. 정부는 대한민국 전체 소비의 30%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의 경제 주체다. 어떤 재벌보다도 규모가 크다. 삼성이 사주고 현대가 제품을 사 주기 시작하면 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순식간에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제2, 제3의 한컴과 안랩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국산 SW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많은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실제 공공기관에서는 국산 SW에 대한 역차별이 여전하다. 값이 싸고 난이도가 낮은 일반 업무용 SW보다는 부가가치가 크고 난이도가 높은 전문 분야일수록 국산 SW에 대한 기피와 차별이 심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 보유 SW 현황을 전수 조사하고, 매년 구매 수량을 파악해 관리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나는 많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정부 전체적으로 한글과 오라클 제품을 각각 몇 카피나 사용하고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어봤지만 어디서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파악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기 어렵고, 육성하기도 어렵다. 자녀 성적을 높이는 일만 해도 아이가 지금 몇 점 받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다. 대통령과 정부가 SW 산업 육성 의지가 확고하다면 우선 정부가 어떤 SW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매년 무엇을 얼마나 사는지, 그 중에서 국산이 얼마나 되는지 현황부터 파악해 보는 것이 어떨까.
권대석 클루닉스 대표 hyntel@clun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