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출자는 인정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확정되면서 삼성, 현대 등 12개 그룹이 `경영권 방어 비용`으로 약 38조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각각 20조원, 10조원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CEO스코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 제한 기업 집단으로 지정한 51개 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가 있는 12개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비용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0일 밝혔다.
조사는 기존 순환출자가 금지된다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순환출자 고리의 마지막 단계 기업이 보유한 1% 이상 지분을 출자 기업이 자사주로 매입한다고 가정해 비용을 계산했다. 마지막 단계 기업이 중복되는 순환출자 고리는 제외했다. 순환출자 고리는 있지만 최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한진그룹과 그룹 해체 위기를 맞은 동양그룹은 제외했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때 12개 그룹이 39개 순환출자 고리의 마지막 단계를 끊는 데 필요한 비용은 모두 38조45억원(12월24일 종가 적용)으로 추산됐다.
그룹별로는 주요 순환출자 고리가 8개인 삼성이 20조6008억원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은 8개 고리 가운데 `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의 고리를 끊는 데만 15조313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어 현대자동차가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2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데 10조3467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는 주요 고리 10개를 끊는 데 3조8663억원이 필요했고, 현대중공업은 1개 고리를 해소하는 데 1조5491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풍(4개 고리·6625억원)과 현대백화점(2개 고리·6010억원), 한솔(3개 고리·1003억원)도 지분 매입을 위해 1000억원 이상을 지출해야 했다.
현대(4개 고리·729억원), 대림(1개 고리·684억원), 현대산업개발(1개 고리·582억원), 동부(3개 고리·543억원), 한라(1개 고리·240억원) 등 그룹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해야 했지만,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해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하고 인수·합병, 증자, 구조조정 등 사유의 신규 출자는 예외로 규정하는 등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실효성 크게 떨어졌다”며 “절감된 비용이 재계의 주장대로 투자로 이어질지는 향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순환출자 금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함께 경제민주화 법안의 양대 축으로, 애초 기존 순환출자 해소까지 요구하던 야당이 한발 물러서면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연내 입법이 완료될 전망이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