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의 전유물이었던 디스플레이용 보조 전력칩 시장에 지난 연말부터 TI·맥심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세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가격이 저렴하고 수익률이 기존 전력 칩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제품이지만 이 시장마저도 해외 업체들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TI가 고성능·고수익 반도체 위주로 영업을 하고 이익률이 떨어지는 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하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TI는 지난해 초 PMIC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날로그반도체가 고수익·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일컬어지던 시대가 지났다”며 “몇년 새 가격이 하락하는 속도가 종전보다 빨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4분기(7~9월) 64억8000만달러 매출액을 기록하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한 퀄컴은 2014 회계연도 1분기(10~12월) 매출액 전망을 최저 63억달러(약 6조7101억원)로 내놨다. 지난해 중저가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400·410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박리다매 시장에 뛰어든 것도 고수익·프리미엄 AP 시장이 포화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이미 50% 점유하고 있는 미디어텍의 아성을 쉽게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퀄컴 본사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에 비해 5% 줄어들면서 내부적으로 비상 경영이 선포됐다”고 전했다.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액 역시 감소 추세다. 인텔은 지난해 매출액이 1% 하락했고, TI는 5.5%, ST마이크로는 4.9%, 르네사스·소니는 각각 15.3%·28.1%씩 줄었다. 아날로그반도체 파운드리 역시 침체를 겪었다. 타워재즈는 지난해 일본 파나소닉 공장(팹) 등을 인수하면서 전체 매출액을 늘렸지만 기대만큼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했다. 타워재즈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매출액이 정체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승승장구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전자·IT 업계가 스마트폰 시장 이후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다는 게 더 문제다. 최종찬 전자부품연구원(KETI) 시스템반도체연구본부장은 “차량용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신시장을 찾기가 어렵다”며 “기업들이 시장을 발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