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핵심임원이 동종 업계, 그것도 경쟁사 최고경영자(CEO)로 이직하는 건 그동안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면 1~2년 자문역으로 활동하다 중소 협력사로 옮기거나 대학·연구소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기술 개발을 총괄했던 연구위원은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경업금지의무 계약을 일반직원보다 강하게 맺었다.
그렇다고 이직을 막기는 어렵다. 당장 먹고살 방편이 없는 임원이 업무 경험을 살려 이직하는 걸 막을 수 있는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핵심 직원 이직과 관련해 경업금지의무 위반 계약의 효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지만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할 때는 무효라는 시각이다. 이에 따르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 기간, 지역,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 제공 여부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약정의 유·무효를 판단한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당 사용자만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도 해당된다. 오강민 법무법인 정동 변호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계약은 약정 자체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직금지 규정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보통 2~3년으로 규정된 전직금지 기간 동안 중소 협력사나 학교 등으로 적을 옮겼다가 경쟁사 CEO로 부임하면 된다. 최신 기술이나 영업 핵심 비밀을 알기는 어렵지만 그동안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삼성은 이 같은 우회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지난 2010년 반도체 외주생산(파운드리) 사업을 키울 당시 대만 TSMC 핵심 임원을 영입하면서 시차를 뒀다. 그 임원은 2년간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하다 삼성전자로 옮겼다. 2012년 서버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사업에 진출하면서 AMD 고위 임원들을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소재 사업을 확장하면서 일본 광학필름 업체 기술 개발 임원을 데려왔지만 일본 본명 대신 한국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해 논란에서 비켜났다.
업계 관계자는 “국경도 기업 간 경계도 사라지는 추세라 기술 유출 우려를 문제 삼아 이직을 막기는 힘들어졌다”며 “해당 기업 차원에서나 국가적으로 퇴직 임직원의 노하우를 활용할 발전 방법을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