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효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한 휴대폰 보조금 규제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 통신사들은 정부가 강력 제재 방침을 밝힌 당일에도 규제를 비웃듯 고액의 보조금을 살포했다. 수년간 사후약방문 식 처벌과 수시로 기준이 바뀌는 고무줄 제재가 반복되면서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기업의 내성만 키워놓았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정부가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입법을 통한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날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애플 `아이폰5S`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 등 최신 스마트폰이 10만원에 판매됐다.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온라인 사이트가 다운됐고, 동대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심야에 휴대폰을 개통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날을 `2·11 대란`으로 부를 정도다.
앞서 지난달에도 `1·23 대란`으로 불리는 통신사간 보조금 전쟁이 펼쳐졌고, 이달 초와 지난 주말에도 고액 보조금 지급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실제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이달 8~10일 번호이동건수는 무려 11만2961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3만7600여건이나 된다. 방통위 과열기준인 2만4000건을 크게 웃돌았다.
11일 심야 보조금 살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조금 규제를 위반한 사업자에게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직후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입자 확보에 사활을 건 사업자들이 정부의 규제를 의식하지 않는 경쟁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을 통한 규제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지적한다.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권고일 뿐 강제 사항이 아니다. 법적 효력도 없다. 영업정지나 과징금 등의 처벌 수단이 있지만 제한적이고, 처벌 수위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해 두 차례의 방통위 처벌에서 첫 번째는 영업정지를 부과한 반면에 두 번째에는 과징금만 부과하면서 `고무줄 처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정이 이쯤 되자 사업자들도 가이드라인을 통한 규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부와의 관계로 인해 규제를 받아들일 뿐, 행정소송을 하면 정부를 이길 수 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가이드라인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횡행한다. 27만원이라는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할부원금은 높이고, 일정 기간 후에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갈수록 편법과 변칙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면서 어수룩한 소비자가 오히려 비싸게 휴대폰을 구매하는 이른바 `호갱` 피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소비자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강력한 정책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부사장은 “과징금과 같은 징계 수단이 있지만, 보조금 문제나 통신비 인하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면서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 간의 불일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책 수단과 관련한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부사장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입법을 통해 정부에 좀 더 강한 권한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고무줄 규제가 오히려 기업의 내성만 키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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