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PC 활용한 그리드 컴퓨팅 놓고 포털-통신 갈등...가이드라인 제정 핫이슈로

포털업계가 사용자 개인컴퓨터(PC) 자원을 콘텐츠 전송에 활용하는 이른바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을 속속 도입하면서 통신업계와 갈등을 예고했다. 포털사업자가 서버나 전용회선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대신 고객 PC 자원을 네트워크 부하 분산에 사용하는 것에 통신업계는 물론이고 일부 소비자들도 거부감을 나타내 논란이 예상됐다.

포털업계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통상적인 기술”이라는 입장인 반면에 통신업계는 “보안은 물론이고 사용자 고지 등이 미흡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우려를 내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이달 웹툰 서비스에 `스피드 뷰` 옵션을 추가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용자에 한해 메모리 등 PC 자원을 공유해 웹툰 전송 속도를 늘린다.

스피드뷰를 설치하면 매일 11시에 업데이트되는 신작 웹툰을 30분에서 10분까지 빨리 감상 할 수 있다. 사용자 PC를 일종의 캐시 서버(사용자가 자주 찾는 콘텐츠를 모아둔 서버)로 활용하는 것이다.

통신 업계는 네이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일부 통신사는 P2P 업체들이 사용자 동의 없이 그리드 컴퓨팅으로 고객 PC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불법·변칙 P2P`로 규정하고 이를 막기 위해 지난해 딥패킷인스팩션(DPI) 등 패킷 검출 솔루션 도입, 시범 서비스까지 진행했다.

통신 솔루션 업체 한 사장은 “고객 동의 유무를 제외하면 이번 스피드뷰와 변칙 P2P의 네트워크 부하 분산 기술방식은 유사하다”고 말했다.

통신업계는 포털 사업자의 그리드 컴퓨팅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에는 서버와 전용회선을 늘려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고객에게 전가하는 셈”이라며 “국지적인 네트워크 부하를 일으킬 수 있고 사용자 PC 자원 업로드에 따른 보안 문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털 업계는 그리드 컴퓨팅 적용이 사용자 동의를 거쳤고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스피드뷰는 최초 설정이 `오프(off)`이고 사용자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웹툰 페이지 안에서만 적용되는 옵션”이라며 “네이버 콘텐츠딜리버리네트워크(CDN)나 사용자 리소스 중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웹툰이 새로 업데이트 되는 밤 11시를 앞두고 트래픽이 몰리니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장치라고 부연했다.

포털의 그리드 컴퓨팅 기술 적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은 스포츠 중계, 음원 스트리밍 등 콘텐츠 전송에 개인 PC를 활용해왔다. 프로그램 설치 시 뜨는 약관에 이를 명시하고 동의를 받는 형식을 취했다.

주로 고화질,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만 전면에 노출된 탓에 한때 일부 사용자를 중심으로 그리드 프로그램을 찾아 삭제하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했다. 스피드뷰 역시 서비스 적용 이후 사용자들 사이에서 `설치 공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그리드 컴퓨팅 확산에 맞춰 갈등이 고조되자 분쟁 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용자 동의 과정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철수 인제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사용자 PC자원을 기반으로 업로드가 되는 만큼 (그리드 컴퓨팅이) 보안 위협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사용자 동의 단계에서 부작용과 기술 매커니즘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 전반에서 공론화와 가이드라인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결국 인터넷 종량제까지 연결되는 문제”라며 “사용자 PC를 네트워킹에 활용하는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설정 할 것인지 이에 따른 부작용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