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국전력과 집사광익(集思廣益)

[데스크라인]한국전력과 집사광익(集思廣益)

‘집사광익(集思廣益)’.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올해 던진 화두다.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 한다는 뜻이다. 전력산업을 둘러싼 현안을 가감 없이 귀담아 한전의 미래를 만들겠다는 역설적인 의지로 비춰진다.

공기업에 대한 ‘비정상의 정상화’ 결론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초 고강도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전이 제출한 부채감축 자구노력은 자산매각과 경영효율화를 포함해 5조8000억원이다. 사옥과 직원사택, 해외자산을 매각해 효율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부채의 숲’을 되짚어 보자. 현재 한전의 부채 규모는 95조원이다. 정부는 2001년 한전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쪼갰다. 민간에 매각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전력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고 한전은 자회사들로 부터 최소 수익을 보장하며 사들인 전기를 대기업에 손해를 보고 팔았다. 반대로 전력피크 때는 대기업 소유 민간발전사들로부터 비싼 값에 전기를 사들이는 기형적 구조가 계속됐다. 한전이 95조에 달하는 적자를 끌어안게 된 주된 이유다.

최근 조환익 사장은 부채감축 시기의 변곡점을 1년 이상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전이 정부에 제출한 ‘2017년 10조원 부채감축’ 방안이다. 감축변곡점을 1년 앞당긴다고 해도 나머지 85조원은 그대로 남아 다음 세대가 갚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동 본사와 강남 사옥 등을 매각하면 맡겨진 ‘수술’은 성공할 수 있지만 장기과제는 풀 수 없는 ‘외과시술’에 그칠 공산이 크다.

사실 한전의 부채는 한전만의 책임이 아니다. 원료가격 상승으로 연료비는 늘었지만 전기요금에 반영시키지 못해 적자폭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적정 수준의 전기 요금을 인상하자니 물가 때문에 쉽지 않다. 공기업의 태생적 한계가 한전을 더욱 고민스럽게 한다. 최근 2년간 4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이 인상됐지만 일본·독일의 41~60%에 불과하다. 소프트뱅크·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외국 IT기업이 전기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IDC)를 한국에 짓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요금 인상은 한전의 부채를 줄이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의 헛된 공론에 빠지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전력판매 부문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면 한전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연독점과 공공성 확보 등의 명분으로 존속해 왔던 글로벌 공기업들이 경쟁체제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도 통신, 철강, 정유부문이 경쟁체제를 통해 소비자 지향 경쟁을 하면서 세금을 내는 주체로 탈바꿈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난 해소를 위해 한전의 판매부문을 떼어야 한다는 논리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전력당국이 이와 관련된 용역과제를 수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그리드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다양한 부가가치 산업으로 창조경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뒤에는 전력판매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복선이 숨어 있다.

세상에 흉년이 들면 지주와 만석지기들이 곳간 문을 먼저 열었다. 나눔의 의미 이전에 소작농이나 이웃을 기근으로부터 구해 놓아야 내년 농사를 기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전은 전력산업계의 맏형이다. 나눔과 베품을 떠나 시장에서 목 놓아 외치는 전력산업 개혁의 다양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위풍당당 했던 예전의 한전을 만들기 위해 누구의 의견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집사광익의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