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덕 좀 봤나. 개인정보 유출사고 분노가 잠잠해졌다. 이제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되겠다. 갈수록 심각해질 자발적 개인정보 유출 문제다. ‘브로큰 윈도’라는 미래 범죄소설(제프리 디버)을 읽고 나니 더 걱정된다.
타인 신분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를 다룬 소설이다. 그는 인간 데이터베이스(DB)에 침투해 피해자와 동시에 자신을 대신해 잡힐 살인자를 골라낸다. 물적 증거를 조작하니 완전범죄다. 이 인간 DB는 기본 신상정보 뿐만 아니라 새로 산 물건, 만난 사람과 장소까지 온갖 정보를 끌어 모은다. 놀라운 것은 국가기관이 아닌 데이터마이닝 기업 소유라는 점이다.
민간 교도소까지 등장한 마당이다. 국가 핵심 업무까지 민간에 맡기는 미래는 전혀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다. 한번만 뚫려도 치명적이니 기업은 유출 방지에 더 철저하다. 내부인도 믿지 않는 이중삼중 보안장치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언젠가 뚫릴 지라도 이런 통제는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 스스로 정보를 흘리는 것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다. 미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개인 프라이버시를 인터넷 검색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쏟아낸다.
구글은 검색 키워드만으로 접속한 사람이 누구이며 그 조차 알지 못하는 생각을 읽고 미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다. SNS는 더 하다. 자발적 정보 유출 해방구다. 사람들이 친구 관계와 관심사를 비롯한 온갖 정보를 SNS에 고스란히 갖다 바친다. 그것도 모바일로 실시간 중계한다. 정작 유출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검색과 SNS 소통을 끊으라는 말인가. 그럴 수 없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일부가 됐다. 다만, 어떻게 수집되며 활용되는지 알아야 한다. 무심코 올린 글과 사진이 주민번호 유출보다 더 심각한 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생활 침해 사례 대부분은 엄청난 개인적 비밀 노출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사실들의 공개로 인해 발생할 것이다.’ 디버가 인용한 로버트 오해로우(숨을 곳이 없다)의 문구다.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를 보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어차피 수집이 불가피하다면 개인 식별이 가능해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기업이 개인 정보를 찾는 것은 마케팅에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개인이 모여 보인 소비 욕구와 구매 행태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을 지나치게 규제하면 일반 기업이 이런 마케팅 정보를 얻을 길이 없다. 아예 이를 양성화하면 어떨까. 원하는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개인 식별 정보 수요는 줄 것이다. 어차피 이메일마케팅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우리 사회의 접근은 거꾸로 간다. 한번 크게 덴 정부는 모든 정보 수집과 활용을 더 엄격히 막으려 한다. 이미 몽땅 털려 의미도 없지만, 이렇게 해야 앞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순진하고, 또 안쓰럽다.
엄격한 규제는 개인 식별 정보 유출 수요만 높인다. 유출시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 개인정보 암호화와 같이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다양한 마케팅 정보 가공과 생산까지 막으면 엉뚱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유비쿼터스센서네트워크(USN) 시대가 오면 원치 않는 개인정보 유출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심지어 내쉬는 숨으로 건강정보까지 파악하려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근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수집과 활용을 적절히 통제하되 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 수요와 유출을 억제할 시장 원리 적용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고민에 매우 인색하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