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반도체 장비 공룡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도쿄일렉트론(TEL)의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물밑에서는 국내 양대 로펌인 김앤장과 태평양이 대리전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 반도체 업계의 시선이 쏠린 사안이라는 점에서 두 로펌의 자존심 대결도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결합 심사 결과 승인이냐 조건부 승인이냐를 놓고 양측은 팽팽한 법리 싸움을 벌이는 분위기다.
우선 AMAT는 TEL과의 기업결합심사 사건을 김앤장에 의뢰했다. 김앤장은 승인을 얻어내기 위한 법적 논리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국내 업계를 대변하는 태평양은 조건부 승인 결정을 유도하고 있다. ‘경쟁 제한성’을 판단할 점유율 기준이 서로 다른 셈이다. 공식적으로 태평양은 국내 한 반도체 장비 업체의 의뢰를 받았지만, 사실상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 한 소식통은 “협회는 AMAT·TEL의 합병이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앤장과 태평양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현재로선 조건부 승인 결정에 무게가 실린 상황이다. 지난해 반도체 노광 장비 1위인 네델란드 ASML이 제출한 미국 사이머와의 기업결합 심사를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내린 전례를 감안해서다.
조건부 승인으로 결정되면 가장 큰 수혜를 얻을 당사자는 삼성전자다. 거대 합병 회사가 탄생하면 그동안 구매력을 통해 유지해왔던 협상 우위 전략이 약화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로선 이번 합병 승인 심사 결과에 최대한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면서 “협회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여론전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기간은 최장 120일로 오는 15일에 끝난다. 다만 공정위 측은 “이는 자료 보정에 소요되는 기간을 제외한 것으로 종료 시점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AMAT·TEL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 등 총 6개국에 기업 결합을 신고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