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기차 엑스포, 생태계 그리고 컨트롤타워

[데스크라인]전기차 엑스포, 생태계 그리고 컨트롤타워

15일 제주에서 ‘국제 전기자동차 엑스포’가 일주일 일정으로 개막했다. 세계 각지에 수많은 자동차 전시회가 있지만 ‘전기차’ 단일 품목으로 글로벌 행사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첫 전기차 행사라는 상징성은 크지만 사실 성공 여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조직위원회조차도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전기차라는 품목도 그렇고, 제주도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정부 관심도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이틀 만에 누적 관람객이 3만명을 돌파했다. 주최측은 물론 참가 기업도 깜짝 놀랐다. 현지에서도 이구동성으로 개최 장소인 서귀포 국제컨벤션 센터에 몰린 인산인해 수준의 관람객에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개막 시점에 행사 성공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출발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새로운 산업 기회다. 수요, 즉 시장의 태동이다. 전기차가 수요자의 ‘적극적인’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공급이 아닌 수요자 주도로 움직이면서 생태계를 위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전기차는 산업계 관심사였을 뿐이다. 공급업체가 분위기를 만드는 쪽이었다. 당연히 시장도 없었다. 지난해까지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는 고작 2000대 안팎이었다. 가솔린과 같은 화학연료를 쓰는 다른 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치다. 시장이 열리면서 생태계를 위한 기본 조건이 갖춰졌다.

또 하나는 기존 산업의 위기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전기차는 콘셉트 카 수준이었다. 미래 자동차를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차업체 입장에서 보면 일반인을 위한 전기차 단독 전시회는 상상 할 수 없었다. 이는 자동차 분야의 ‘게임의 룰’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테슬라 돌풍’을 떠올려 보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기업 테슬라는 자동차산업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테슬라는 고작 연간 판매 대수가 3만 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동차 10억대를 만드는 기존 자동차업체를 바짝 긴장시켰다. 그만큼 전기차가 몰고올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100년 넘게 이어 온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전기차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다. 배터리·충전기·전기모터·신재생 에너지 등과 결합하면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큰 분야다. 카셰어링 서비스과 무인운전 시스템, 스마트 그리드 등 새로운 자동차 문화는 물론 신수종 분야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미 미국·중국·일본 등 선진국은 자동차 미래 권력의 주도권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한 마디로 한숨이 앞선다. 산업 진흥과 육성을 위한 시스템은커녕 아직까지 힘을 하나로 모을 컨트롤타워조차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과 지원 업무는 환경부, 규제는 국토교통부, 전기차 세제는 기획재정부, 표준과 진흥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걸쳐 있다. 중심이 없다보니 수년 째 산업은 제자리걸음이다. 시장 요구는 높아만 가는데 정작 정책은 사분오열로 뒷걸음질이다. 정책 중심 없는 전기차 산업, 그만큼 시행착오만 커질 뿐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