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경계해야할 디지털 무역 보호주의

[ET단상]경계해야할 디지털 무역 보호주의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IDC에 따르면 전 세계가 1년간 IT 분야에 쏟아붓는 돈이 3조7000억달러(약 4000조원)에 이른다.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서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대략 660억달러(약 72조원) 규모로 호주, 인도,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국가 경제에서 IT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IT 발전으로 인한 변화는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개인들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검색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금융기관들은 거래 분석을 통해 불법적인 거래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의사들은 누적된 진료 기록을 통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아내기도 하고, 기업들은 전 세계 공급망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해서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직접 상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이른바 디지털 무역 시대다.

그러나 디지털 무역의 눈부신 발전에 비해 이를 교통정리해 줄 국가 간 규칙은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다. 일부 신흥 국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무역 보호주의까지 등장했다.

디지털 무역 보호주의는 관세처럼 직접적 형태의 것도 있지만, 국경 간 데이터 전송 금지, 자국 기술 보호 정책, 정부 조달 분야의 자국 제품 우대, 지식재산권의 침해 등 간접적인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는 곧바로 디지털 무역의 억제, 혁신의 저해, 경제 성장의 침체로 이어진다.

돌이켜 보면,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 보호무역주의를 해결한 전례가 있다. 198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로 명명된 다자간 협약은 글로벌 무역의 핵심 과제였던 지식재산권, 서비스, 외국자본투자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디지털 무역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무역 원칙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당면한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혁신적 디지털 무역을 위한 원칙 수립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국경 간 데이터 교류의 개방이다. 디지털 시대에 서버가 어디 있으며 IT 인프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에 걸맞은 무역 원칙을 세우고 자유로운 데이터 교류를 허용해야 한다. 둘째 기술혁신을 지속하기 위한 지식재산 보호 강화다. 디지털 무역시대에 지식재산권은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자산이다. 이런 바탕 없이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 셋째 공정한 경쟁 제도의 도입이다. 글로벌 시대에 자국의 상품 또는 서비스만 고집하며 시장경쟁을 제한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공공 조달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곳곳에서는 새로운 무역 질서를 위한 협상들이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 GDP의 40%, 전 세계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TPP(Trans-Pacific Partnership)라는 포괄적 협상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EU 간 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와 서비스 분야 다자간 협상인 TISA(Trade in Services Agreement), IT 신제품에 대한 관세를 허물기 위한 70개 국가의 다자간 협상인 ITA(Information Technology Agreement) 도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협상들은 디지털 무역의 새로운 틀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인 동시에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우리가 디지털 무역 보호주의의 덫에 걸려 퇴보할지 아니면 새로운 무역 질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지는 현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디지털 무역 강국이라는 미래의 우리 모습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으로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정 소프트웨어연합(BSA)코리아 의장 sunjpark@micro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