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용 ATM, 장애인은 쓸 수 없었다

#. 연평균 4000만명이 다녀가는 인천국제공항. 장애인 권익을 위해 공항 입·출국장에 설치된 외환은행(지하 1층)의 휠체어용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사용자가 거의 없었다.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은행권 최초의 조치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좁은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어 휠체어를 타고서는 ATM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인천국제공항 외환은행지점에 설치된 ATM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단자가 플라스틱으로 막혀있다. 이 지점에 깔려있는 모든 ATM기 역시 단자를 막아놔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외환은행지점에 설치된 ATM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단자가 플라스틱으로 막혀있다. 이 지점에 깔려있는 모든 ATM기 역시 단자를 막아놔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 장애인 단체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 외환은행 ATM. 장애인 혼용 ATM을 설치했지만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 장애인 이용에 필수인 음성안내단자를 모두 틀어막아놨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제공해야할 음성안내 이어폰은커녕, 음성안내서비스도 나오지 않았다. 음성안내 소리가 크면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뱅크’를 지향하는 외환은행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 서비스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 1일 본지가 인천국제공항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화문과 강남 일대에 설치된 외환은행 ATM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 ATM이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임을 확인했다.

외환은행 인천국제공항지점에서 운영 중인 ATM은 총 4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단자를 플라스틱으로 모두 막아 놓은 상태였다.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ATM은 일반 ATM 사이에 설치돼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 근접해 이용하려면 주변에 다른 이용객이 없어야 겨우 가능했다.

여의도와 광화문, 강남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의 ATM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3대 중 1대꼴로 음성안내 단자는 모두 막아놨고, 시각장애인에게 대여하는 이어폰을 비치해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강남 일부 지점은 장애인의 ATM 이용이 불가능하다며 직원에게 문의하자, 폰뱅킹을 이용하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정부가 최근 장애인용 ATM을 도입하고 장애인의 금융 이용권을 보장해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내세운 명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외환은행은 100억원이 넘는 계약금을 내고 인천국제공항 지하1층에 지점을 개설했다. 글로벌 은행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개설한 곳이다. 내국 장애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장애인의 출입도 잦다.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장애인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은행 지점당 1대씩 장애인 ATM 설치를 권고했으나 외환은행 등 일부 은행은 아예 음성안내를 위한 장치를 차단하는 등 제대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면서 “정부의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용) 음성단자 차단 등이 외환은행 ATM에서 발생했는지 정확한 상황을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그 사유 등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